[블룸버그칼럼]도박꾼 佛마크롱, '킹메이커' 됐다
조기총선 깜짝 승부수를 던졌던 ‘상습 도박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무대에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됐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에서 유권자들은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의원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에는 단호하게 ‘아니오(non)’라고 외친 반면, 경쟁자인 좌파와 중도파에는 ‘어쩌면(maybe)’ 수준으로 망설이는 데 그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 진영에 있는 녹색당과 사회당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오기 위해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키어 스타머 총리(노동당 대표)가 걸었던 길을 따르려 하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큰 위험은 유로존의 제2 경제권인 프랑스에서 정치 분열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조기 총선은 그 자체로 넷플릭스 드라마 같았다. 그리고 결과 역시 흥미진진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숙적인 르펜 의원이 의석수에서 뒤처진 것을 보며 특유의 만족스러운 눈짓을 보일지도 모른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진영 앙상블과 좌파연합 NFP가 총선 2차 투표를 앞두고 결성한 전술적 동맹은 반극우 연대인 이른바 ‘공화국 전선(Republican Front)’을 강화하는 데 분명한 효과를 나타냈다. 여기에 르펜 의원의 모호한 정책, RN 소속 일부 후보들의 경험 부족 역시 르펜 의원이 이끄는 극우정당이 더 많은 표를 얻지 못하도록 막는 효과로 이어졌다.
게임에서 현 순위를 보여주는 리더보드 상위를 살펴보면 상황은 훨씬 불명확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파 블록은 이번 총선에서 NFP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으나, 의회 과반인 289석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극우 RN 후보에 맞서 3위 후보가 사퇴하는 전술적 투표를 통해 의석 피해를 일부 막기는 했으나, 여전히 마크롱 대통령은 인기가 없다. 마크롱 대통령의 진영 내 사람들조차 그의 조기총선 결정 등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어 더 이상 개혁을 밀어붙일 정치적 자산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진영이 잠재적인 연립정부 파트너로서 게임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대표 극좌 정치인이자 불꽃 같은 선동가인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의 영향권에 있는 좌파연합은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의회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선에서 1위를 한 좌파연합 NFP는 멜랑숑 대표가 이끄는 LFI와 공산당·녹색당·사회당 등 4개당으로 구성됐다).
다시 말해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왕(King)에서 킹메이커(Kingmaker)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첫발을 내밀면서 우파진영보다는 좌파진영을 살필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은 현재 어느 정당도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만큼 비현실적이고 지출이 많은 정책이 시행되기 어렵다고 안심하고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초기만 해도 프랑스 극우파를 위한 조르자 멜로니(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총리) 시나리오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프랑스 극좌파를 위한 키어 스타머(이달 총선에서 승리하며 정권을 교체한 영국 총리)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앞서 좌파 성향이 뚜렷한 제러미 코빈 전 대표의 해임 후 영국 노동당의 선거 승리 가능성이 더 높아졌던 것처럼, 권력을 향한 NFP의 경로 역시 극좌 정치인인 멜랑숑 대표와 결별하고 좀더 중도 성향의 연정을 구성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진영과 좌파연합 내 녹색당, 사회당의 의석을 합하면 의회 과반인 289석에 상당히 가까울 것이다.
중도좌파 정치인인 라피엘 글릭스만이 말했듯, 우리는 주피터(Jupiter·마크롱 대통령의 별명)에도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프랑스 혁명 시대의 공포정치가)에도 해당하지 않는, 즉 마크롱 대통령도 멜랑숑 대표도 아닌 의회적 아크를 구축할 수 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위험이 존재한다. 스타머리즘(Starmerism·급진 좌파였던 노동당의 당색을 중도좌파로 바꾸며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키어 스타머 총리의 접근방식)을 성공적으로 모방한다고 해도, 노동당처럼 의회 다수당이 되진 못할 것이다.
어떤 연정이든 구성이 완료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린다. 프랑스는 5공화국 역사상 사실상 전례가 없는 수준의 정치적 분열로 취약해질 것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급증하고 있고 경제 역시 유로존 평균 대비 낮은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세금 인상과 같은 어려운 결정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또한 생산성, 혁신, 인구 감소 등과 같은 뿌리 깊은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픽텟 에셋 매니지먼트의 크리스토퍼 뎀빅 전략가는 어떤 연정이 출범하든, 연금개혁부터 복지까지 마크롱표 개혁의 효과가 일부 반감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현재로서는 유럽연합(EU)의 2대 경제 대국인 프랑스가 극우 포퓰리즘의 시대를 피하게 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 닥칠 일에 상당히 취약한 상태라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는 3년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을 노리고 있는 르펜 의원은 야당의 심판대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계속 공격할 기회를 즐기고 있다. 프랑스로선 여전히 ‘정상’ 상태로 돌아가기엔 멀리 떨어져 있다.
라이오넬 로랑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Macron the Gambler Wins Chance to Play Kingmaker’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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