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없다" 목사의 설교, 혼란에 빠진 교인들

안지훈 2024. 7. 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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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교회의 문제로 공동체를 조명하는 연극 <크리스천스>

[안지훈 기자]

극장에 들어서면 십자가 모형의 무대가 관객을 반긴다. LED 조명을 이용한 천장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고, 공연이 시작되면 들려오는 성가대의 찬송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교회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담임목사 '폴'. 폴은 교회 공동체를 뒤흔들만한 설교를 시작하고, 부목사 '조슈아'를 필두로 성도들의 반발과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연극 <크리스천스>는 이렇게 발생하는 균열과 갈등을 다룬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지만, 고민은 교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민은 공동체와 사회로까지 확장되며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올해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박지일이 담임목사 '폴'을 연기하고, 그런 담임목사에게 반발하는 부목사 '조슈아'는 김상보가 연기한다. 김종철이 교회의 장로 '제이' 역에 캐스팅되었고, 안민영이 폴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박인춘이 폴의 설교에 의문을 품는 성도 '제니'를 각각 연기한다. <크리스천스>는 7월 13일까지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연극 <크리스천스> 공연사진
ⓒ 두산아트센터
 
연극을 관통하는 질문

"지옥은 없다", 폴은 작정하고 설교한다. 자신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불길에 휩싸여 죽은 한 소년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소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지옥에 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불신지옥'을 부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폴은 너그러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고백한다. 신앙에서의 단일한 길, 그리고 그에 따른 배제를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도 천국에 있다"는 말까지 하고, 교인들은 혼란에 빠진다.

부목사 조슈아는 즉각 반발한다. 그런 조슈아를 두고 폴은 언제든 이 교회를 떠나도 된다고 말하고, 교인들에게 자신을 따를 것인지 조슈아를 따를 것인지 투표하게 한다. 이때 조슈아는 50명의 선택을 받고, 그렇게 이들은 교회를 떠난다. '너그러움'을 설파한 폴이 볼 때, 이들은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폴은 이들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너그러움을 위해 너그럽지 않은 사람에게 너그럽지 않아도 되는가? 이건 비단 연극 속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였다. 필자는 고민의 영역을 사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사회운동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 전 활동가 출신의 한 정치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최근 젊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현장과 운동 조직의 권위적인 문화에 젊은 활동가들이 회의를 느끼는 걸 많이 봤다고. 권위주의 타파를 외치는 활동가들조차 자신의 조직에서는 권위적인 지도부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페미니즘 활동가 나오미 울프(Naomi Wolf)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닮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긴 이유도 목적과 수단의 모습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리라. 폴과 연극 속 교회가 우리 사회의 자회상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연극 <크리스천스> 공연사진
ⓒ 두산아트센터
 
우리는 폴과 얼마나 다른가

부목사의 이탈과 교인의 반발을 지켜본 폴은 극 말미에 가서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자신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폴이 보여주는 질문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믿게 된 것인가? 느낌으로! 그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에게서! 그건 어떻게 아는가? 느낌으로! 폴의 고백은 허무한 반복에 머무른다.

그러다 폴은 다음의 질문에 봉착한다. "만약 달랐다면?" 폴은 모태신앙으로 처음부터 크리스천이 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믿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또 폴은 지옥을 부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부목사 조슈아는 달랐다.

조슈아는 크리스천이 아닌 어머니를 떠나보냈고, 그런 어머니가 지옥에 간다는 걸 믿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조슈아는 믿어야 했고,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 얄팍한 소망을 억눌렀다. 지옥의 존재에 관해 폴과 조슈아가 느끼는 무게는 같지 않았다.

이는 다른 환경과 경험이 다른 신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착한다. 여기서 다시 사회로 고민의 영역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른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환경, 지리적 환경, 여기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경험은 각기 다른 신념과 이념, 사고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맥락을 고려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쉽게 배제한다. 그들이 소수일 때, 사람들의 배제는 강해진다. <크리스천스>는 이러한 사회의 문제를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통렬히 보여주며, 따라서 연극의 꼬집기는 왠지 더 쓰라리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폴에게 반발했던 성도들조차 폴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필자 역시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쓰라리다.
 
 연극 <크리스천스> 공연사진
ⓒ 두산아트센터

덧붙이는 글 | 연극 <크리스천스>는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이는 2024년 두산인문극장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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