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제2의 조국 사태 예고하다 [민경우의 운동권 이야기]

데스크 2024. 7. 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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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극으로 보기에는 사실적 묘사 많아
진보 내부의 권력투쟁 벌어질 것으로 보여
민주화 시절의 초심 잃고 권력과 부 취해 부패
무한 질주 진보파 아성에 균열 낼 것으로 보여
ⓒ넷플렉스 홈페이지

설경구, 김희애가 주연한 ‘돌풍’을 굳이 분류하자면 정치 활극쯤 된다고 본다. 쉴새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맥락을 무시한 점핑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설경구의 장일준 대통령 시해,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투신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치 활극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는 점이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아마도 돌풍의 작가 박경수는 부담 없는 정치 활극에 본인이 말하고 하는 바를 틈틈이 숨겨 놓은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활극에서 작가가 감춰 둔 시대적 의미를 건져내어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마치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작업과 같을 것 같다. 아래서는 그 작업에 도전해 보겠다.

극 중 장일준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을 복합한 인물로 아마도 더 노무현에 가까운 인물이다. 극 전체를 이끌고 가는 기본 구도는 노무현 사후 친노 세력을 대표하는 설경구와 김희애의 대결이다.

여기서 다음의 두 가지는 없거나 빈약하다. 하나는 노무현 사후 노무현 시대를 계승하고자 하는 친노 그룹과 박근혜 시대를 재연하고자 하는 친박 그룹의 대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박경수 작가는 박근혜 시대를 재연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을 낡은 세력 또는 거론할 가치가 없는 구세력으로 다룬다.

이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40~50대 중년층이 진보세력인 조건에서 갈등은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진보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볼 수 있다. 내 생각이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설경구-김희애 구도에서 설경구의 태도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아마도 작가는 박근혜 세력에 관한 기술보다는 김희애로 대표되는 어떤 정치세력을 응징하는데 비중을 둔 것 같다.

돌풍에서 빠뜨린 또 다른 대결 구도는 김희애에 맞서는 다양한 세력과 경향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설경구의 친구였던 서기태를 조금 더 부각해 설경구-위험한 신념·대책 없는 행동주의, 서기태-의회주의·점진적인 정의의 구현 정도로 만들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랬다면 드라마는 정치드라마로서의 품격을 보다 많이 갖췄을 것 같다. 그것이 빈약함으로 인해 드라마는 정치 활극 같은 느낌을 너무 많이 갖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박경수 작가는 노무현 사후 주류로 부상한 김희애 정치세력에 대한 정치적·역사적 응징에 비중을 둔 것 같다.

김희애를 응징한다면 어떤 방향에서 응징할 것인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이건 마지막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설경구의 장례식에는 “~~민주주의여 만세여”가 울려 퍼지고 감옥에 들어간 김희애는 여대생 시절을 환기하며 벽에 “민주주의 만세”라고 쓴 글씨 앞에서 오열한다.

즉 박경수의 공격 포인트는 순수했던 민주화 시절의 초심을 잃고 권력과 부에 취해 부패해 버린 점이다.

이를 위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범식 장면이 여러 번 도입된다. 꽤 공을 들였을 화면에는 지금까지의 운동권 영화·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 아 민주 정부”나 “바쳐야 한다”와 같은 본격적인 운동권 노래들이 등장한다. 전대협 출범식 장면도 규모만 차이가 날 뿐 과거 장면을 매우 근접하게 묘사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백미는 전대협 의장이었던 한민호가 자살 직전 남긴 유서이다.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있던 한민호는 “지난 10년 부끄러웠다고, 마지막은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의장 한민호답게 떠나고 싶다”라고 밝힌 후 “내가 사랑한 조국과 역사 앞에 맹세합니다. 나는 결백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저와 같은 불행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한민호”라고 유서의 말미를 장식한다.

박경수 작가는 지난 시기 이른바 진보 정치인·지식인들 사이에서 있었던 불투명한 죽음과 그에 대한 심각한 사실 왜곡을 한민호의 자살을 통해 고발·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운동권이 초심을 잃고 타락했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현 정세에서 어떻게 작용하게 될까?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 지지율이 60~65%쯤 된다. 이 중 적극 부정층이 30% 내외이고 나머지는 관망적·온건한 반대층이다. 전자가 중심이 된 대통령 탄핵 시도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와중에 그렇게 정국을 이끌어 왔던 김희애 그리고 김희애의 저변에 있는 마음 상태, 초심이 건강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2019년 조국 당시 운동권·진보적 지식인층은 대체로 7:3 정도로 갈렸다. 70%는 강한 성채를 쌓고 30%의 회의층·부정층을 강하게 몰아붙여 그들의 더 큰 반란을 진압했다. 만약 돌풍을 통한 반란을 2019년 조국 사태에 이은 2차 조국 사태로 규정할 수 있다면 2차 반란에서는 30%보다 더 큰 이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학습 효과가 있다. 전대협 의장 한민호의 대사, 거듭된 죽음의 원인에 대한 숱한 의구심 등은 결정적으로 노무현 사후 15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고 이들 경험이 드라마의 사실성·진실성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정치 활극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읽는 이유도 그러한 학습 효과 때문이다.

상반기 상영된 ‘건국전쟁’이 보수의 새로운 자극을 포인트로 하고 있다면 ‘돌풍’은 무한 질주해온 진보파의 아성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낼 것으로 보인다.

글/ 민경우 시민단체 길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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