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결정대로 사과할 것" 한동훈 측 "다른 경로론 사과 거부" [김 여사 문자 5개 공개]
지도부가 경고하고 중진은 물론 3040 정치인들까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만류했지만, 국민의힘 내 친윤(親尹)계·친한(親韓)계는 종일 설전을 주고받으며 ‘읽씹(읽고 무시)’ 논란을 키웠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비대위 회의에서 “전당대회가 과도한 비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비공개 간담회에서 “전당대회에 용산을 개입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황 위원장 역시 “선거가 끝난 이후도 생각하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그럼에도 원희룡·한동훈 후보간의 공방은 이어졌다. 두 캠프 대변인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김 여사 문자를 받고) 판단하지 않은 게 직무유기”(이준우 ‘원희룡 캠프’ 대변인)라고 했지만, “답변했다면 더 큰 문제로 불거졌을 사안”(정광재 ‘한동훈 캠프’ 대변인)이라고 맞붙었다.
친윤계인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한 후보가 자신에게 ‘이준석 의원과 싸워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하며 “이건 공적 소통인가, 사적 소통인가. 앞뒤가 다르다”고 가세했다.
이처럼 원 후보를 미는 친윤계와 한 후보를 미는 친한계가 정면충돌하는 데는 '읽씹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차에서 비롯한다. 메시지의 내용과 유출 경위에 대해 양측은 정반대 입장이다.
①메시지 내용=8일 TV조선이 입수해 공개한 메시지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 1월 19일 한 후보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를 하고 싶다”면서도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이라고 전했다. 김 여사는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다”면서도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 빠졌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 있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
이틀 뒤 한 후보가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으며 ‘윤·한 갈등’이 폭발하던 날, 김 여사는 430자 분량의 장문의 문자를 다시 보냈다. 김 여사는 한 후보를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라고 지칭하며 “위원장님이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 여사가 두 차례 대국민 사과 의향을 밝혔음에도 한 후보가 답하지 않아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게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게 친윤계의 시각이다. 친윤계 관계자는 “한 후보의 실기(失期)로 총선의 중요한 국면을 통째로 날려버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후보는 지난 5일 “실제는 사과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걸 강조하는 취지로 기억한다”며 김 여사에게 사과 의사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에 대한 사과 요구가 자신을 향한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친한계 관계자는 “김 여사가 직접 보낸 메시지 외에도 여러 경로로 (김 여사의) 사과 거부 의사가 전달됐는데, 이제 와서 ‘한동훈이 답장 안 해 김건희가 사과 못 했다’고 하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②유출 경로= 친윤계에선 초기 메시지 유출 책임자로 한 후보를 지목한다. 김 여사와 한 후보 두 사람이 나눈 메시지인 만큼 한 후보가 주변에 메시지를 전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후보 본인이 그 문자를 친한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얘기를 했다. 기자들에게 들은 얘기”(이준우 ‘원희룡 캠프’ 대변인)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한 후보 측은 “한 후보가 김 여사 문자를 보여준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원 후보 측의 마타도어”라고 했다. 오히려 친윤(親尹) 세력이 ‘한동훈=반윤(反尹)’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메시지를 퍼뜨렸다고 여기고 있다. 메시지를 유포한 인사로는 ‘찐윤’ 이철규 의원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8일 SNS에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라며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③손익 계산= 문자 파동을 받아들이는 양상도 전혀 다르다. 친한계는 이번 논란으로 ‘당이 변해야 한다’는 한 후보 주장이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후보측 관계자는 “당원들 사이에선 ‘읽씹 논란’ 자체가 진절머리난다는 반응이 많다”며 “기득권을 누려온 자들이 한 후보를 집단으로 린치하는 장면에 당심이 뭉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친윤계에선 한 후보에 대한 ‘총선 패배 책임론’과 ‘배신자 프레임’이 당원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고 본다. 원 후보 측 관계자는 “전당대회 전까지는 ‘윤·한 갈등’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당원이 많았다”며 “한 후보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면서 ‘한동훈은 안 된다’는 의견이 늘었다”고 말했다.
나 후보와 윤 후보는 한 후보가 논란을 결자해지 하라는 입장이다. 나 후보는 “소통의 기회를 차단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라도 당연히 사과하고 논란을 끝내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윤 후보 역시 “(한 후보의) 정치적 판단 미스가 아닌가”라며 “‘다음에 연락드리겠다’는 문자라도 넣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오현석·이창훈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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