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낡은 법 놔두고 ‘법대로’만 외치나
경기도 화성시의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생때같은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하청노동자(20명)였고, 외국인 노동자(18명)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파견 노동자들이 생산 공정의 산재 사고에 노출된 ‘위험의 외주화’이고,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3D 생산현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위험의 이주화’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율은 3.2%인데 지난해 산재 사망자 중 외국인이 10.5%나 차지했다.
아리셀의 경우 불법 파견 논란이 일었고, 고용노동부가 조사 중이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 대상 업무를 32개로 한정했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는 파견이 금지된다. 파견은 급여를 주는 고용주와 일을 시키는 고용주가 다르다. 일 시키는 고용주(사용사업주)도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의 사용자 의무 대부분을 지켜야 한다.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파견노동자를 차별해서도 안 된다. 파견은 규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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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공장 화재로 불법 파견 논란
파견법 자체가 현실에 안 맞아
통상임금도 서둘러 입법화해야
」
반면에 민법상 계약인 도급은 특정 업무의 완성을 약정하고 원청이 하청에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일을 완성해야 하기에 하청업체의 지시권이 인정된다. 도급이라고 주장해도 현장에서 원청이 업무지시를 했다면 파견이 된다. 아리셀 경영진은 불법 파견을 부인하지만 ‘법대로’ 해석하면 불법 가능성이 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아리셀의 업무지시가 있었다면 도급이 아니라 파견이고, 이들이 맡은 포장·검수 업무는 헌법재판소가 2017년 제조업 근간이 되는 핵심 업무로 직접 생산공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만큼 불법 파견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파견법 자체가 낡고 문제투성이라는 점이다. 파견법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도입됐다. 한데 지나치게 엄격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오히려 심하게 만들었다. 예외적으로만 파견을 허용하다 보니 병원 서비스를 상담하는 병원 코디네이터처럼 산업 발달로 새로 생긴 업종은 파견이 가능한지 불투명하다. 이러니 우리나라 파견활용률은 임금근로자의 1%로, 경쟁국인 독일(2.3%)이나 일본(2.9%)보다 훨씬 낮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81%가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도 파견 허용을 원했다. 사용자 주장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파견 규제는 너무 강하다. 미국·영국은 파견 대상 업무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고, 독일·일본은 극히 일부 업무를 제외하곤 대부분 업무에 파견을 허용한다. 경총이 최근 ‘22대 국회에 드리는 입법 제안’에서 파견·도급 규제 완화를 두 번째로 꼽은 이유다. 파견 대상을 확대하면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파견 노동자로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업무지시라는 파견법 적용 기준 때문에 원청이 사업장의 안전관리 의무에 소홀한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불법 파견과 사내 도급을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을 법에 담아야 현장의 혼란이 줄어든다. 파견법만 낡은 게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회사의 모든 임금 항목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와야 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한탄했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입법 조치가 없어 불필요한 분쟁이 계속 생기고 모두 법원으로 들고 온다는 것이다. 소송이 많아지니 로펌만 콧노래를 부른다.
최저임금 규제도 생각해 볼 문제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01만 명, 전체 근로자의 13.7%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이렇게 많은 위법을 양산하면 결코 좋은 규제라고 할 수 없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법을 고쳐야 한다. 22대 국회에는 역대 가장 많은 60명의 법조인이 있지만 낡은 법을 고쳐 법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 모두 검찰공화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일까. 낡은 법 조항에 위배됐는지만 기계적으로 따진다. 이런 식의 ‘법대로’가 제대로 된 법치(rule of law)는 아닐 것이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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