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이름의 주술성
나는 어릴 때 ‘미옥(美玉)’이라는 내 이름이 싫었다. 한문을 배우면서 아름다울 미(美)가 ‘양이 크다’라는 뜻에 충격을 받았다. 먼 옛날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대, 살찌고 큰 양은 먹음직스러웠을 것이다. ‘아름답다’의 어원이 입맛을 다시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구슬 옥(玉)은 굴러다닌다는 뜻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살찐 양으로 굴러다녀야 할 것 같아 몹시 우울했다. 과학적 근거를 대자면 엄마를 위시한 외갓집 여자들의 기골이 모두 장대했기 때문이었다. 제멋대로 혼자 이름을 해석한 초등학생 시절 나는 막걸리 한 잔에 내 이름을 지었다는 얼굴도 모르는 옆집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차라리 순자나 미순이가 부러웠다. 안 그래도 속상한데 등굣길 철도 건널목에 서 있으면 기차까지 내 이름을 불렀다. “미오가아아아앙~”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혼자 부둥켜안고 있는 것이 열등감이었다. 시골에서 흔했던 돌림 이름이 순, 옥, 자 등이었다. 이름에 불만을 가진 딸들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못마땅해한 이유가 꼭 이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어른들은 아들들의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작명가를 찾아가 이름을 받아오거나 동네 어르신에게 청을 넣었다. 사람의 운명은 이름대로 간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주술을 믿었던 것 같다.
나는 마루에 앉아 어른들의 담소를 들으며 어린 마음에도 딸로 태어난 게 억울했다. 나중에 불만을 가졌던 친구들에게 개명의 의사를 물으니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셨다거나 익숙하다거나 귀찮다거나 여러 말이 있었지만 이미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름이란 남들이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미옥이로 불리는 순간 미옥이가 된 것이었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도 달라졌다. 영철이나 영자는 사라지고 이제 민준이나 서연 같은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 대세다. 그러고 보면 이름은 정체성은 물론 개별성과 시대성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단 한 번 이름으로 반항한 적이 있었다. 다정다감한 영어 선생님이 영미 소설 주인공들의 이름을 뽑아와서 반 아이들에게 지어주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겐 캐서린이나 엘리자베스 같은 우아한 이름을 주고 내겐 입센의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노라를 안겼다. 나는 ‘굴러다니는 살찐 양’도 억울한데 ‘대책 없이 집 나가는 노라’에 분개했다. 어린 시절이라면 모를까 나름 지식을 깨친 상태에서 용납할 수 없었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말이다. 다른 이름을 달라고 언성을 높였는데 나와 딱 어울리는 이름이란 말을 들었다.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의식화된 여성”이라는 알쏭달쏭한 말과 함께였다.
내가 아는 노라는 자식도 있건만 직업도 없이 홧김에 가출하는 여성이었다. 나는 야단을 맞으면서 고집을 부린 대가로 H가 붙은 노라가 되었다. 그날의 설전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친구들이 그래도 노라는 노라라고 놀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이 운명이라면 나는 내 운명에 개입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소설을 쓰는 많은 이들이 등장인물의 이름짓기에 고심한다고 한다. 이름만으로 성격 묘사가 가능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여고 시절 영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중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앙을 가지지 않아도 문학을 깊이 읽기 위해 성경책 읽기는 필수였다. 내가 좋아하는 멜빌의 『모비 딕』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Call me Ishmael).”
이스마엘은 주인의 아이를 가져 안주인에게 거리로 쫓겨난 여종의 자식이었다. 춥고 배고픈 그녀가 광야에서 통곡할 때 천사가 나타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너는 아들을 가졌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네 아들은 들 나귀 같은 사람이라, 닥치는 대로 치고받아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 살리라.” 나는 ‘닥치는 대로 치고받는’ 이스마엘의 생존 전투력에 방점을 찍었다. 『모비 딕』에서 이스마엘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은 미래를 암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름은 입체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성이 있다. 나는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을 보면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추측하곤 했는데 대체로 작가는 작명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다시 내 이름을 생각한다. 작명가 옆집 할아버지는 홀로 된 며느리에게 의탁하는 몸이었다. 단칸방에 아이들은 우글거리는데 또 아이가 태어났다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찾아온 엄마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분이 지은 이름의 뜻은 ‘아름다운 구슬’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굴러다니는 살찐 양’으로 가난한 살림에 큰 보탬이 될 자식이 태어났다는 희망을 준 것 같다.
나는 개명의 의사가 없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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