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노 턴 온 레드
미국 수도 워싱턴에는 대부분 교차로에 ‘노 턴 온 레드’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앞의 신호가 빨간불이면 우회전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횡단보도 건너는 보행자를 우선 보호하려는 취지다. 워싱턴은 2025년까지 모든 교차로를 ‘노 턴 온 레드’로 바꿀 계획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하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연방의원들이 지역 행정에 꼬치꼬치 관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지금 워싱턴 사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다. 대선 결과나 의회 의석수에는 별 영향이 없지만, ‘미국이란 왕관에 박힌 보석’ 워싱턴이 새파란 ‘블루 스테이트’란 점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동안 워싱턴에선 선거만 하면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시장·시의원 대부분 민주당 소속이고,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득표율은 92%나 된 반면, 트럼프는 5%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대졸자와 흑인 비율이 높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코로나19에 소독제 먹으면 된다는 황당한 소리를 고학력자들이 좋아할 리 없고, 지저분한 사생활로 기소된 뒤 “나도 당신들처럼 차별받고 있다”는 말을 흑인 커뮤니티에서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워싱턴에서 외면받는 이유를, 이곳에 깊게 뿌리내린 ‘딥 스테이트(Deep State)’ 때문이라고 봤다. 보수성향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은 선출되지도 않았으면서 보수 정책에 번번이 방해하는 공무원 집단을 ‘딥 스테이트’라고 규정했다. 특히 납세자 돈을 받으면서도 좌파적 방송을 하는 공영방송 직원도 문제라고도 했다.
따라서 재집권 시 연방 공무원 고위직 4000명을 바꾸고, 이후 행정명령을 통해 추가 5만 명을 충성파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친트럼프 군대’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트럼프는 자신의 집권 말기, 실제 공무원들의 해고를 쉽게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바이든 정부에서 되돌린 바 있다.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공적 행위에 대한 면책권’까지 인정받으면서 이를 재추진할 가능성이 급격히 커졌다.
하지만 이런다고 트럼프가 정말 워싱턴을 ‘레드 스테이트’로 만들 수 있을진 의문이다. 대형 참사의 책임을 좌파 방송의 공작이란 음모론으로 돌리고, 주변은 쓴소리하는 사람 대신 충성파로만 채운다고 지지율에 도움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미국 밖에서도 확인이 됐다.
빨간불에 우회전할 수 있게 해준다고, 유권자들 마음마저 곧장 돌아서진 않는 법이다.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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