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나토탈퇴’ 내건 72세 멜랑숑, 프랑스 총선 뒤집다

서유진 2024. 7. 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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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프랑스 총선 2차투표에서 극우정당의 1당 등극 저지에 성공한 뒤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장 뤼크 멜랑숑 LFI 대표. [EPA=연합뉴스]

이번 프랑스 총선의 최대 승자는 장 뤼크 멜랑숑(72)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다. LFI는 이번 총선에서 1위를 한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의 최대 정당이고, 멜랑숑은 극우 국민연합(RN)의 제 1당 등극을 막은 선봉장이었다.

정치 경력 48년의 멜랑숑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급진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1951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로 이주한 스페인계 우편집배원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탕헤르(현재 모로코의 항구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2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프랑슈콩테대학교서 철학을 전공, 프랑스어 교사와 지역신문 기자 등을 하다가 1976년 사회당에 가입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당의 거물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미테랑계 주요 인사로 활동했다.

이때만 해도 멜랑숑 대표는 사회당의 거물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됐다. 사회당 소속으로 프랑스 지방의회, 중앙의회, 유럽의회에 여러 차례 선출됐다. 1998년~2004년에는 프랑스 에손주 부지사를 지냈다. 그러던 그는 “사회당이 너무 친기업적으로 변질했다”고 비판하며 2008년 탈당한 뒤, 2016년 LFI를 창당했다.

멜랑숑 대표는 세 차례 대권(2012년·2017년·2022년)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할 당시 공약집 『인간이 먼저다』를 내놨는데 공약집으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에서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간이 먼저다』에는 남녀평등의 실현, 모든 차별 척결, 임금 인상과 사회적 불안정해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멜랑숑 대표는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에 맞서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프랑스 남부에서 무슬림을 타깃으로 한 혐오 범죄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무슬림 혐오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가 열렸는데 이때 멜랑숑 대표가 행진에 참여했다.

그가 부상한 건 극우가 힘을 얻고 기존 좌파가 중도화하는 프랑스 정치에서 좌파 가치에 충실한 공약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비 전액 국가부담, 공공 근로자 임금과 최저임금 인상, 생필품 가격 상한선 설정, 무료 급식 실시, 이민법 완화 등을 내걸었다. 대외 정책에서는 유럽연합 조약 재협상,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를 주장했다. 유럽연합은 소득불평등을 야기하는 세계화의 도구, 나토는 서방의 대외 군사개입의 도구라고 비판한다.

고령인데도 프랑스 청년층에서 인기가 높은 그는 프랑스판 버니 샌더스(82)로 불린다. 둘 다 고령인 데다 미국 상원에서 유일한 민주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와 정치적인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 청년층에게 인기가 높다는 점 때문이다. 멜랑숑 대표는 공식 유튜브 구독자수만 108만명에 달해 SNS 영향력에선 마크롱 대통령(34만명)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급좌파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이보다 온건한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중도 좌파인 플라스푸블리크 등 좌파 정당이 뭉친 연합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6월9일 임시 총선을 소집한 이후 결성됐다. 1936년 총선에서 승리한 반파시즘의 ‘인민전선’에서 이름을 따왔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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