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문자' 논란 속 끝없이 저질스러워지는 與 전당대회…흥행은커녕 피로감만 [정국 기상대]
지나친 갈등 양상에 당내 우려 커져
컨벤션 효과도 無…지지율 0.7%p 하락
韓 "대표 돼도 영부인과 당무 대화 안할 것"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집어삼켰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를 꺾으려는 친윤(친윤석열)계가 '제2연판장' 움직임을 보이고,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구태 정치'라 맞서며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진 전당대회가 반성과 성찰보다는 '또 용산' '또 친윤'으로 전개되면서 국민적 피로감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동훈 후보가 김건희 여사가 사과 의사를 밝혔음에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불거진 이후, 양측은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낸 문자 내용 자체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친윤 인사들은 '사과 의향'을 밝힌 김 여사의 문자를 한 후보가 '읽씹(읽고 무시)'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 후보측은 공개된 문자 내용에 누락된 부분이 있으며 김 여사의 문자가 '사과'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8일 TV조선은 문자 5건의 내용을 공개하고 나섰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 1월 15일에서 25일까지 열흘간 한 후보에게 5건의 메시지를 보냈다.
1월 15일 발송한 첫 문자 메시지에서 김 여사는 "대통령과 내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라며 "한번만 브이(VIP의 준말로 윤 대통령을 지칭)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시냐.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꼭 좀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했다.
나흘 뒤인 19일에 보낸 세 번째 문자 메시지에서는 "내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를 하고 싶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하는 것 뿐"이라며 "대선 정국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p 빠졌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다"고 사실상 '사과'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쳤다.
다시 나흘 뒤인 23일에 보낸 네 번째 문자에서는 "내가 '댓글팀'을 활용해 위원장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든 것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며 "김경율 회계사의 극단적인 워딩에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에 이해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마지막으로 25일에 보낸 문자에서는 "대통령이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서 맘 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큰맘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줬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지 공감이 간다"며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면서 오해를 풀라"고 재차 윤 대통령과의 식사를 권했다. 한 후보는 해당 5건의 메시지에는 모두 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문자 전문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김건희 여사가 사과 의향을 내비쳤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만, 친윤 일각에서는 '문자 논란'을 기회 삼아 한 후보를 무릎 꿇리기 위한 '제2연판장' 사태까지 획책했다. 한 후보는 일부 원외 인사들이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추진하자 이를 '제2의 연판장 사태'로 규정하고 반격에 나섰다. 끝내 기자회견을 취소됐으나 여파는 식지 않았다.
김건희 "사과 해서 해결되면 하고 싶지만,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을 것…"
"대선 때 사과하니 오히려 지지율 빠져"
"김경율 워딩 가슴 아팠지만 이해하기로"
이날 국민의힘 전당대회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도 해당 논란을 둘러싼 공방은 이어졌다. TV조선이 공개한 문자 전문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내심 '사과' 하고 싶은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합동연설회 당시에는 이같은 사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윤상현 후보는 이날 연설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 후보의 여사 문자 무시는) 일종의 정치적 판단 미스 아니냐.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인데 적절히 대처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나경원 후보는 "소통의 기회를 차단한 것 자체로 비대위원장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 후보가 '읽씹'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한동훈 후보는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며 "나는 당대표가 돼도 영부인과 당무 관련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당대표가 되면 영부인께서 당무 관련한 상의를 하시면 답할 것이냐"라고 반격했다.
다만 한 후보를 향한 공세에 앞장서 왔던 원희룡 후보는 이날은 공방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처럼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이 전당대회 이슈를 잠식하면서 일각에서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당이 총선 이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도 성찰과 반성은 없고 '친윤' '비윤' '당무 개입' 등으로 당내 싸움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적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범여권의 최대 리스크인 김건희 여사 문제가 당내 핵심 현안으로 다뤄지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정치쇼'에 출연해 한동훈 후보를 둘러싼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사가 보낸 문자가 임금님의 교서는 아니지 않느냐. 그걸(문자를) 받들어 모셔야 하는 그런 것도 아니고, 당 차원에서 적절한 대응을 해야 되는 게 맞는 것"이라며 "왜 그 부분(사과)에 대해서만 한 전 위원장의 허락을 득하고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씹었다고 보기에도 조금 어렵고, 설령 문자를 씹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게 문제인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한동훈 "공과 사, 명확히 구분해야…
당대표 돼도 영부인과 당무 대화 안할 것"
김재섭 "여사 문자, 받들어 모셔야 하는
것 아니다…씹었다고 보기도 어려워"
국민의힘 한 의원도 이날 데일리안에 "전당대회가 오히려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 같다. 전당대회에서 왜 이런 언급들이 계속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되면 누가 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노출된 혼란상은 국민적 실망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에너지경제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4∼5일 유선 3%·무선 97% ARS 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 36.0%, 민주당 38.2%를 기록했다. 이밖에 조국혁신당 10.9%, 개혁신당 3.8%, 새로운미래 1.8%, 진보당 1.2%, 기타 정당 1.6%였다. 무당층은 6.6%로 조사됐다.
특히 국민의힘은 일주일 전 조사와 비교해 0.7%p 하락했는데, 이는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는커녕 거듭된 당내 갈등으로 실망감만 높이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갈등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후 합동연설회 전 당권주자들을 소환해 주의를 당부했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전당대회가 과도한 비난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일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당헌·당규에 어긋나는 언행은 선관위와 윤리위를 통해 즉시 엄중한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당대회에 대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의혹 등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고 전혀 그런 점에 대해 염려는 없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공방이 계속된다면 당이 결속하는 게 아니라 분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당대회는 당과 국가의 미래, 당의 성찰과 비전이 국민께 제시되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며 "지금 우리는 헌법을 유린하는 거대 야당과의 싸움에 당력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서병수 선거관리위원장도 합동연설회에서 "칼로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고 한다"며 서로를 향한 비난 자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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