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훈풍 부는데…‘생산 차질’ 내건 삼성전자 노조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8일 총파업을 강행했다. 삼성전자 창사 55년 만의 첫 파업이다. 전삼노는 ‘반도체 생산 차질’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이날 오전 11시,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H1 정문에서 사흘간의 파업을 알리는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삼노 측은 6500여명이 결의대회에 참여했다고 알렸지만 경찰은 절반에 못 미치는 3000여명으로 추산했다. 전삼노가 준비한 검은 우비를 입고 머리에 ‘총파업’이라고 적힌 붉은 띠를 맨 조합원들은 ‘휴가 지급 약속 어긴 정현호는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사측이 지난해 임금 교섭 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부회장)이 약속했던 유급 휴가 제도를 이행하고 경제적 부가가치(EVA) 방식의 초과 이익성과급(OPI) 제도 기준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전삼노가 공개한 수치를 보면 파업에 참여한 6540명 중 설비·제조·공정 직군은 5211명이었다. 전삼노는 이를 근거로 “주요 반도체 라인인 기흥·화성·평택에서 참여한 조합원만 4477명”이라며 목표로 했던 반도체 생산 차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생산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공장에서 하루에도 휴가를 쓰는 사람이 수천명”이라며 “파업 인원이 빠진다고 해서 생산에 문제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 파업을 예고했던 만큼 인력 조정 등을 통해 사측에서 대비를 해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생산 차질 현황이 보고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DS부문의 직원은 약 7만명으로, 현재 반도체 생산 라인은 24시간 3교대로 돌아간다.

파업의 성패를 떠나 삼성전자 노조원이 파업을 위해 업무를 멈추고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의 무노조에 이어 무파업 경영도 끝난 셈이다. 파업의 명분이 충분했는가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먼저 ‘2%만을 위한 파업’이었다는 점이 논란이다. 전삼노가 전체 조합원(3만657명) 중 약 2%만을 위해 파업을 결의한 점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크다. 전삼노 측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한 2024년도 임금 인상률(5.1%)을 거부했던 조합원 855명에게 사측이 더 높은 인상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를 파업의 명분으로 삼았다.

파업의 시점도 노조 편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졌고 삼성전자는 지난 5일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소식을 알리면서 주가가 급등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올해 DS부문의 상반기 목표 달성 장려금(TAI)을 월 기본급의 37.5∼75%로 공지하고 즉시 지급했다.

화성=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