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 관두고 시민운동가로 "철저하게 준비했죠"

이민선 2024. 7. 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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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보다 화려한 2막] "문익환 목사처럼 살겠다"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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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 기자]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 이민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여건이 된다면 정년 기다리지 말고 빨리 사표 내세요."

직업 시민운동가가 되고 싶어 대기업 부장직을 정년이 6년이나 남은 쉰넷에 미련 없이 내던진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의 진지한 조언이다.

6월 26일, 경기도 안양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찬찬히 뜯어보니 그동안의 느낌 그대로 역시 선한 인상이다.

사표가 빨라야 하는 이유는 더 늙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그 일에 대한 적응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가 일찌감치 사표를 낸 이유다. '일찍 나오지 않았다면 실무자가 아닌, 시민운동 원로 역할밖에 못 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 쉰넷이던 지난 2018년 평생직장 K보험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민운동에 뛰어든 지 어언 6년. 소원하던 대로 그는 현재 비정규직센터 대소사를 도맡아 하는 실무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빠른 사표보다 더 중요한 건 철저한 준비. 준비 없이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직에 있을 때 하고 싶은 일과 관련 있는 책도 읽고, 또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퇴직하기 직전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에 다녔다면 사업을 하더라도 보험과 관련 있는 걸 하게 될 테고, 당연히 새로운 인연이 아닌 그동안의 인연만을 유지하게 될 테니까요."

살림살이에 대한 계획도 중요한 준비.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안 벌고 덜 쓰기'이다.

"돈 버는 일은 하지 않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고요.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강연료 같은 게 가끔 들어와서 차비 정도는 하하... 퇴직금으로 국민연금 나올 때까지 살 계획을 세우고 IRP(개인형 퇴직연금)에 가입했어요. 여기서 매달 나오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 넉넉하지는 않지만 둘(부부)이 사는데 부족하지는 않아요. 이거 떨어지면 국민연금, 모자라면 주택연금으로 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익환 목사처럼 사는 게 꿈" 
   
 퇴직하는 신영배 사무국장에게 힘을 불어 넣어준 가족들의 감사패
ⓒ 신영배
 
그는 50 문턱을 넘을 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철학과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인생 롤모델(닮고 싶은 사람)인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처럼 살기 위한 준비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보람차고 화려한 인생 2막'을 위한 포석이다.
걱정스러웠던 가족들 동의는 의외로 쉽게 얻었다. 대학 입시에서 취업까지 스스로 척척 해내는 기특한 아들과 딸이 있어, 가장으로서의 어깨도 가벼웠다. 가족들은 감동적인 내용을 담은 감사패까지 만들어주며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27살 청년으로 입사하여 30년을 한결같이 성실하게 근무하셨습니다. 한 여자의 사랑하는 남편으로 아이들의 존경하는 아빠로 우리의 인생 선배로 모범이 되어온 당신 신영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반백의 멋진 중년으로 돌아와 젊은 날 품었던 신념을 위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젊은 시절 그의 꿈은 직업 시민운동가였다. 청소년기, 무언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고, 이 마음은 대학 시절 1987년 6월 항쟁을 목격하면서 구체화 됐다. 이런 마음이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법대생 신영배를 학생 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직업적인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은 컸지만 젊은 그는 당시 학생 운동권 사이에 유행하던 노동 현장이나 시민운동 현장에 뛰어들 수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야만 학업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법대생이라, 집안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심한 내적 갈등도 겪어야 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고시 공부를 했어요. 제대하니, 그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후반기. 나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당시 '빨간책'이라고 하던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고 틈나는 대로 노동 현장 같은 데를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의식화를 했습니다. 정말 어려웠던 것은 집안의 기대를 저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죠. 판검사 나오는 줄 알고 기대가 대단했거든요."

평생 가난을 등에 지고 살면서도 성실하게 4남매를 건사하던 아버지의 암 투병이 시작되면서 그의 내적 갈등이 더 커졌다. 노동(통일)운동을 해야 할까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할까.

"생계를 위한 일만을 하지는 않았다"
  
 노동상담을 하고 있는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 신영배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취업이다.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한 모습이라도 보여 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생계를 위해 발을 들인 회사이지만, 오로지 생계를 위한 일만을 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도 했고, 시간을 쪼개 당시 거주하던 대구 지역 시민단체 일을 하느라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서울에 있는 본사 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부터 회사 일에만 집중했지만, 시민운동에 대한 갈증만은 막을 수 없었다.

그때와 지금 중 언제가 더 행복하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시민운동을 하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다해서 하는 일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은 차이가 있다"라고 이유까지 친절하게 설명한 뒤 "회사 다닐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열심히 일해서, 아내가 불만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왜 불만이 많을까?

"회사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이사, 어쩌면 사장도 됐을 거라고 하하하."

'부장 됐는데, 왜 임원으로 진급하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래도 노동조합 활동 경력 자체가..."라고 하다가 말을 바꾸어 "능력 부족이죠"하고는 웃음으로 대답을 마무리했다.

"신자유주의 확산, 걱정스러워"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 신영배
  
직업 시민운동가로서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 '권익 보호'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비정규직 삶에 도움을 주는 현장 활동가로 일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내 건강이 언제까지 내 꿈을 허락할지, 나한테 꿈을 펼치기 위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이런 생각에 사표를 서둘렀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비정규직 권익 보호를 위해 그가 하는 구체적인 일은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과 상담, 각종 캠페인 등이다. 아파트 경비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법학도였고, 회사에서도 주로 법률 관련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살려 노동 문제 등에 대한 무료 상담도 하고 있다.

그는 통일 운동에도 관여한다. 안양·군포·의왕·과천 평화·통일 운동 단체인 6.15 공동선언 실천 경기 중부본부 집행위원장직을 5년간 맡고 있다. 지난 2019년, 철원 DMZ 평화 손잡기 행사에 시민 2천 명을 참여시켰는데, 이때를 가슴 충만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직업 시민운동가로 살아온 6년. 바빠서, 아내와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간 게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없다. 지지해주는 가족과 함께 헌신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명감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어 일 자체가 즐겁다 보니 얼굴 찡그릴 일이 없다. 지난 6년의 삶에 손톱만큼의 후회도 없는 이유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확산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점점 늘어 지금은 전체 노동자의 60%에 이릅니다. 차별과 불평등이 그만큼 심화했단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적자치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공적 개입을 꺼리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비, 미화, 이주노동자, 요양보호사 같은 비정규직에 대한 권익 침해가 무척 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워낙 직종이 다양하고 따로따로 흩어져 일하다 보니 노동 환경 실태 파악도 어렵고 조직화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노동운동의 중심 이동이다. 이미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노동운동의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 말미, '목표, 또는 희망은 무엇이냐?'는 클리셰(cliché, 진부한)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대답은 무척 특별했다.

"통일 운동이나 비정규직 운동은 끝이 없기에 목표를 세우고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보다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달 지점보다 거기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인 거죠. (기자 : 과정에 충실한?) 그렇죠.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면 하루하루가 실패일 수 있어요. 좌절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과정에 충실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 하루하루가 성공인 거죠."

대화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그에게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느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자 그는 "전혀 없다"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 마음이 있으면 권력을 감시하고 정치인 같은 권력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시민운동 본연의 활동에 구속이 된다는 이유였다.

1막보다 더 화려한 인생 2막을 스스로 연 그의 등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며 발걸음을 돌렸다.  
 
 신영배 경기중부비정규직센터 사무국장, 6.15 공동선언 실천 경기 중부본부 집행위원장직도 맡고 있다.
ⓒ 신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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