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호가 밝힌 '엉망진창' 감독 선임 과정 "계속 홍명보 감독님 이야기하길래 뭐가 있나 싶었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유명무실한 상태에서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가 감독 선임 활동을 마쳤다. 홍명보 울산HD 감독의 대표팀 선임이 결정된 가운데, 전력강회위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했던 박주호 위원이 자신의 활동 내역을 상세하게 정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축구협회는 7일 홍 감독이 국가대표 신임 사령탑으로 내정됐다고 발표했고, 이어 8일 이임생 기술발전이사가 관련 브리핑을 가졌다. 석연찮은 브리핑 내용으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박주호 위원이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약 50분 분량의 긴 토크로 그간의 강화위 활동을 정리했다. 녹화는 7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녹화 초반에 홍명보 감독 내정 소식을 듣고 박 위원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 내가 추천한 제시 마시, 무산된 순간 전력강화위는 역할을 잃었다
전력강화위는 지난 2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초반에 각 위원들이 추천 감독을 찾아왔고, 박 위원은 유럽에서 오래 활동했고 젊다보니 외국 감독을 물색해 다른 위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초반에 그가 추천한 인물이 한때 선임에 근접했던 제시 마시 감독이었다. 박 위원은 "마시가 대표팀 상황에 가장 맞는 감독이라 생각했다.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눠봤는데 어떤 축구를 할지도 알 수 있었고, 한국 축구에 대해 관심이 많더라.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바탕으로 추천했다"며 "긍정적으로 교류했고, 마시와 접촉한 게 굉장히 선임과정 초반인 3월이었다. 당시 마시는 다른 팀도 접촉이 있지만 나는 한국에 갈 거라고 한 상태였다. 무산돼 굉장히 아쉽다. 그리고 지금 보시면 (캐나다 대표팀에서) 성과 내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박 위원은 당시 마시를 추천하느라 곤욕을 치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마시를 소개했을 때 다들 별 관심이 없었다. 다들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질문을 하면 내가 특징을 설명해드리는 식이었다. 굉장히 부담스런 상황이었다"라고 했다.
마시 선임은 협상이 잘 되지 않아 무산됐다. 박 위원은 이 시점부터 전력강화위의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잘 작동한 적이 없다며 "전력강화위가 진작에 없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시 마시가 무산된 시점에서 이미 무의미했다"고 말했다.
▲ 아모림 내가 거론했지만, 진지하게 추천한 게 아니다
리버풀조차 연봉이 너무 비싸다며 선임을 포기했던 후벵 아모림 스포르팅CP 감독이 12인 후보 리스트에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축구협회는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선임 작업 초반에 아모림을 추천한 박 위원은 그를 강조한 게 아니었다. 스포르팅이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아모림을 현재의 스타 감독으로 올려놓은 스토리를 위원들에게 소개하면서, 만약 한국이 비슷한 전략을 노린다면 '제2의 아모림'으로 바스쿠 세아브라 감독을 노려도 된다고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박 위원은 막판 12인에 아모림이 들어있었던 점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회고했다.
▲ 임시 감독, 황선홍이 아닌 박항서나 김도훈으로 처음부터 가야 했다
대표팀은 감독 선임이 늦어지면서 3월 임시감독 황선홍, 6월 임시감독 김도훈을 별도로 선임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특히 황 감독의 경우 본업인 U23 대표팀에서 올림픽을 준비하던 소집훈련 시기와 A대표팀 차출 시기가 겹쳤다. 이 여파가 대형 악재인 올림픽 남자축구 예선 탈락으로 이어졌다.
박 위원은 "해외 사례를 봐도 U23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을 임시로 맡아 주는 건 당연한 사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올림픽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남아를 잘 아는 다른 후보, 박항서 감독, 김도훈 감독을 선임하는 게 낫다는 말이 오갔다. 그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해보고 느낀 건데 감독은 다수결로 정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각자 1, 2, 3순위를 적는 투표를 했고 그 투표로 결정됐다"고 했다. 박 위원은 토론이 아닌 투표가 자꾸 진행된 게 황당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동남아를 잘 알고 리스크가 없는 박항서, 김도훈을 1순위와 2순위로 적었다. 임시감독 때문에 황선홍 감독이 올림픽 예선탈락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올림픽 준비 중인 감독을 잠깐이라도 이렇게 쓴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게 박 위원의 회고다.
▲ 박주호가 물색한 외국인 감독 후보들
최종적으로 홍 감독 선임이 결정되기 전, 이 기술이사가 마지막으로 면접까지 진행한 후보가 우루과이의 거스 포옛 감독과 독일의 다비트 바그너 감독이다. 둘 중 바그너 감독이 박 위원의 추천으로 후보에 들었다.
박 위원은 그밖에도 자신이 후보에 올리고 싶어 알아본 인물이 더 있다고 했다. 유명 감독인 니코 코바치(전 바이에른뮌헨 감독)는 유럽 관계자를 통해서 접촉했다. 의사는 있는데 일주일 정도 고민한 뒤 유럽의 팀을 맡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에르딘 테르지치(당시 보루시아도르트문트 감독)는 쉬고 싶다는 의사가 있어 무산됐다. 박 위원은 "마시 정도의 감독을 추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역량의 감독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주로 박 위원이 활동했던 독일, 스위스 쪽에서 능력있는 감독들을 물색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마르쿠스 기스돌(전 호펜하임 감독), 우르스 피셔(전 우니온베를린) 감독을 박 위원이 추진했다. 그리고 토마스 투헬의 수석코치 졸트 뢰브도 알아봤는데, 정확히는 투헬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쉬고 싶다며 내 수석코치는 어떠냐고 말해 대두된 인물이었다. 이들을 모두 지나처 바그너 감독을 추천하게 됐다.
▲ 결국 국내 감독으로 결정된 허무한 과정
전력강화위 초반부터 국내감독이 거론됐지만 이들 대부분 소속팀이 있는 현직 감독이었다. 박 위원은 처음부터 무리수라 생각했다. 특히 현직 국내 감독에게 넌지시 맡을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일단 회의부터 하고 보는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한 "강화위 내부에 국내 감독으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회고했다.
박 위원은 축구협회가 국내감독을 원한다면 차라리 그 방향으로 생산성 있는 회의를 하자고 주장했다. "내가 그랬다. 국내 감독을 원하시는 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국내 감독을 세세하게 살펴본 다음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단점이 있으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체크해서 타이밍도 좋게 모셔오자고 했다."
그런데 계속 표면적으로는 외국인 감독을 이야기하는 회의가 쳇바퀴 돌듯 이어졌고, "회의가 끝나면 위원장님에게 전화로 그렇게 몇몇 분들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력강화위 회의가 어느 시점부터는 외부 압력 때문에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럴 거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럼 일을 안 해도 되지 않았나. 홍명보 감독을 어떻게 도와줄지 협회에서 아이디어를 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언론 보도 중 '국내 감독을 강하게 반대한 소장파 위원'이 있다는 대목이 있었다. 박 위원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은 "내가 국내 감독을 반대한 게 아니다. 게임 플랜과 맞아야, 방향성이 맞아야 협회도 앞으로 말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게임 플랜은 발표해 놓고 이렇게 할 거면 플랜을 내면 안 됐다"며 최근 축구협회가 발표한 발전계획과 국내감독 선임은 모순이라고 했다.
박 위원은 지난 회의들을 돌아보면서 "(국내감독 선임을 위한) 빌드업이었던 것 같다. 회의 시작 전부터 국내 감독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회의 중에 외국 감독 이야기를 하면 뭐가 안좋은지 정확하게 지적을 하는데, 국내 감독이 거론되면 장단점 이야기를 하질 않고 그냥 좋다, 잘한다고만 했다"며 국내감독을 강하게 밀어붙인 전력강화위 위원들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홍명보 감독이 계속 거론됐지만 난 안 된다고 했다. 고사하셨으니까. 그런데도 계속 홍 감독 이야기를 이어가길래 난 뭐가 있나? 싶었다. 안 한다고 한 사람, 김도훈 감독도 12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모림도 300억 원이 필요한 사람인데 12인에 들어가 있었다"며 12인 명단 자체가 이상했다고 돌아봤다.
결국 박 위원은 "협회가 결정한 것이다. 결국은 그렇다"는 점을 인정했다.
박 위원은 "앞으로 전력강화위원회는 만들 필요가 없다"며 "허무하다. 내가 조사하고 추천한 외국인 감독은 쓸데없는 이야기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 회의 내용을 계속 유출하는 강화위원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박주호 위원은 회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유출된 점도 전력강화위 활동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시간이라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회의가 진행 중인데 기사나 온라인 커뮤니티 '썰'로 진짜 내용이 올라왔다. "회의 끝난 뒤 정해성 위원장에게 전화가 오곤 했다. 심지어 회의 중에도 유출됐다. 깜짝 놀랐다. 위원장이 제발 유출하지 말자고 부탁을 하는데 카톡으로 그렇게 쓰자마자 바로 뜨는 경우도 있었다. 유출된 정보만 기사나 이야기에 활용하는 게 아니고 개인 생각도 섞어서 넣는 경우가 많았다."
▲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전력강화위 위원도 있었다
박 위원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위원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대표 임시감독 자리에 들어가려고 했다. 다 있을 때 이야기 한 건 아니고 뒤에서 하더라"라고 어이 없었던 사례를 말했다.
또한 황선홍 임시감독 선임 시점부터 안되겠다 싶어서 회의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그게 다가 아니야, 주호 너는 지도자를 못 해봐서" 라고 말하는 위원도 있었다고 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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