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나 50에 된 공무원, 마지막으로 출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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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식 기자]
"안녕히 가십시오."
지난 6월 30일 사무실을 나설 때 지문인식기에서 나던 소리다. 출입 시 지문인식기에서 나는 소리가 이 날따라 다르게 들린 것은, 나이 50세이던 지난 2014년 임용된 내가 마지막으로 사무실 문을 나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나이 오십에 공무원 되는 법, 이 남자에게 배우세요 https://omn.kr/abuu ).
이 날을 끝으로 9년 8개월의 전주시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주민센터, 구청, 시청 등 4개 과·동을 7번 옮기며 무사히 정년퇴직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내가 근무한 전주시 완산구청 여성가족과 아동보육팀 모습. 7명 팀원 중 청일점으로 두 번의 회식과 발랄한 쪽지를 곁들인 티셔츠 선물을 받았다. |
ⓒ 서치식 |
다친 머리로 오 년간 준비해 십 년 남짓 공무원 생활을 했다. 신입 시절, 업무를 어려워하자 세심하게 배려해 준 동장님에게 '나이와 장애를 이유로 열외 시키지 말아 달라'던 나의 요청은 구청에서 예외 없는 숙직 근무(그 요청을 기억하던 당시 동장님이 행정지원과장이었기에)로 이어지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2Km남짓 떨어진 한옥마을지원과에 근무할 때는 출근길을 이용해 한옥마을 골목골목을 SNS로 홍보하기도 했다.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발급해주던 필자가 원서용임을 알아보고 해준 격려 말을 고맙게 듣고 응시한 시험에 합격해 함께 숙직을 서게 됐다는 동료의 이야기에 가슴 뿌듯한 적도 있었다. 매월 지급되던 수급비로 시험 준비를 하던 경험으로 마지막 근무지를 사회복지로 자원했지만, 생각보다 낯선 업무에 적응을 못해 어려움을 겪으며 팀장을 비롯한 상사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기도 했다.
다양한 사안으로 거의 개인별 관리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과 매월 많은 수급자에게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급하고 오류 분 반납을 은행 마감시간까지 마쳐야 했는데 여기서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특이사항이 있는 수급자는 지급 전 일일이 사전작업을 해야 했는데 단기 기억이 짧은 필자에는 쉽지 않았다.
거기에 예고 없이 울리는 민원전화는 업무 숙련도가 낮은 필자에게는 거의 공포로 다가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하던 팀장은 낯선 복지업무를 마지막 근무로 선택한 필자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늦은 나이에 장애를 안은 공무원으로는 무모할 정도로 끝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굽이굽이 이렇게 든든한 조력자가 있어 가능했다. 또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여러 병증과 내 한계를 자각하는 귀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알아낸, 뇌 손상으로 인한 병증은 사시와 복시, 난독증, 단기 기억 장애 등 광범위했다. 사고로 일부 손상된 뇌로 자기 병증을 자각하는 것은 엄격하고 냉정한 자기 관찰을 통해 가능했다.
한편, 똑같은 오류를 범한 것을 스스로 알아채야만 단기기억이나 난독증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었다. 동일한 오류를 여러 번 반복할 때마다 주변 동료들이 싫은 내색 없이 돕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인사로 담당 팀장이 바뀌었는데도 근무 마지막 날까지 필자를 밀착마크(?)해준 전주시 완산구청 여성가족과 함아무개 팀장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2년 남짓 근무한 여성가족과에서 받은 공로패 업무에 어려움을 겪던 필자를 밀착마크(?)해준 팀장님이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글귀로 만들어진 공로패. 어머니의 구순때 찍은 가족사진응 배경으로 했다. |
ⓒ 서치식 |
정해진 시간은 여지없이 다가와 2024년이 되면서 정년과 회갑이라는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공무원 생활과 중년기를 잘 정리하는 일은 퇴직 후 노년의 삶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거기에 필자는 재활을 통해 장애를 얻기 전의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이른바 '완전한 재활'을 인생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시간을 통해 주변에 공감대를 넓히고 싶었다. 정년과 회갑, 또 개인적으로 반드시 이루고 싶은 '완전한 재활'에 관해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려 지난 5월 11일 친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국립이천호국원, 천안 등에서 1박 2일 가족 모임을 가졌다.
이날, 이천호국원 21번 묘역에선 때 아닌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 독립교회에서 사역 중인 여동생 부부가 독실한 장로셨던 아버님을 위해 당신이 좋아하던 찬송인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를 클라리넷, 오보에로 연주한 것이다. 필자의 정년퇴직 기념 가족 예배는 경주에서 일정을 마치고 새벽에 도착한 큰 형님과 출산을 앞둬 참석을 못한 조카의 선물까지 살뜰히 챙겨 온 아내로 은혜가 충만했다.
필자의 퇴직 소식을 들은 지역 일간지 시절 동료들과의 시간도 가졌는데 이들은 그간의 분투와 노고를 위로하는 감사패로 필자를 감동시켰다.
▲ 2024년 상반기 퇴직자 만찬 |
ⓒ 서치식 |
지난 6월 25일, 마지막 선배님 대접(?)을 받으며 진행된 2024년 상반기 전주시 공무원 퇴임 오찬 간담회를 끝으로 나는 전주시 공무원으로서의 공식 행사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인 이날 사물함 정리를 마치고 퇴거했다.
다친 머리로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공무원 시험. 그렇게 전주시 공무원으로 9년 8개월여를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10여 년 만에야 나는 완전히 자유로운 전주시민으로 돌아온 것 같다. 퇴직으로 공무원 신분은 멈추었지만, 삶이 계속되듯 완전한 재활을 본향(本鄕)으로 하는 내 '재활 순례'도 계속된다.
▲ 우범기시장과 선 필자 퇴임 만찬을마치고 시장님과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
ⓒ 서치식 |
언젠가는 체력 단련실에 설치된 의료기를 우연히 사용하면서, 이전엔 돌덩이 같던 족저근의 구축이 현저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루 중 마지막으로 마사지 후 걸을라치면 발가락 앞등 등 족저굴곡, 족배굴곡에 관여하는 가자미근, 전경골근(앞정강근)이 자극되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풀린 구축이 계속 이어지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자고 일어나면 다시 단단하게 구축되곤 해 좌절과 낭패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보니, 개선과 구축을 반복하면서도 점차 나아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앞꿈치로 차듯 걸음을 강하게 디뎌서 매번 왼쪽 신발 앞꿈치 창이 망가지곤 했다. 아무리 튼튼한 신발을 사도 2개월을 채 못 신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마사지기를 사용하면서 점차 걸음이 발뒤꿈치부터 온전히 잘 디뎌지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를 때 앞꿈치만 계단에 닿던 것도 사라져, 이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퇴직 뒤 남은 내 목표는 하프 마라톤 완주로 증명될 '완전한 재활'이다. 지난 2일 인근에 있는 국민체육센터에 등록했다. 그렇게, 지난 20년 간 계속돼온 재활에 여전히계속 도전하는 중이다.
건강을 회복하려는 재활 운동은, 죽을 뻔한 80여 일만에 다시 살아나게 한 신이 내게 주신 소명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재활은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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