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 그녀, 햄릿 공주 됐다…셰익스피어 고전의 재탄생

홍지유 2024. 7. 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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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공주가 되어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햄릿'(연출 부새롬)에서 햄릿은 덴마크 왕자가 아닌, 덴마크 공주다.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는 남성, 호레이쇼 등 햄릿의 친구는 여성으로 각색했다. 배우 이봉련이 햄릿을 연기한다.

연극 '햄릿'에서 미쳐가는 햄릿을 연기 중인 배우 이봉련. 사진 국립극단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부새롬 연출은 햄릿을 여자로 바꾼 이유에 대해 "여자 햄릿이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왕권을 욕망하고, 복수를 꿈꾸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면서다.

작품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는 "이제는 여성의 얼굴을 한 햄릿을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단순히 남자 햄릿이 여자 햄릿이 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인 햄릿에서 현대적인 햄릿으로 진화했다는 컨셉을 잡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진새 작가, 이봉련 배우, 부새롬 연출. 연합뉴스

빌런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한 점도 눈에 띈다. 원작에서는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을 죽이지만 각색한 햄릿은 누가 왕을 죽였는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부 연출은 "누구도 완벽한 악인, 혹은 선인일 수 없다는 지점을 부각하고 싶었다"며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만연체 대사는 현대적으로 고치고, 여성 차별적인 단어는 들어냈다.

배우 이봉련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햄릿 역의 배우 이봉련은 데뷔 20년 차 중견 배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응답하라 1994', '일타 스캔들' 같은 드라마 히트작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씬스틸러'로 이름을 알렸다. 매체 배우로 얼굴을 알렸지만,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한 해도 연극 출연을 거른 적이 없다. 그는 이번 연습 과정을 설명하며 "햄릿을 맡은 저조차도 편견을 계속해서 깨 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여성 배우에게 햄릿이란 역할이 올 거라고 흔히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저를 햄릿으로 세우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햄릿을 통해 제가 갖고 있던 편견을 발견했어요. 그 편견을 저도 계속해서 깨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 특별히 공을 들였냐는 질문에는 "햄릿이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주목해 달라"고 했다.

연극 '햄릿'에서 햄릿 공주를 연기 중인 배우 이봉련. 앞서 이봉련은 ‘햄릿’으로 2021년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모든 비극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나거든요. 햄릿이 아버지(선왕)를 보는데, 그게 진짜 아버지인지, 망령인지, 왕이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인지를 몰라요. 비극의 시작이죠."

이봉련은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면서 왕권에 대한 욕심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점이 제가 연기하는 햄릿의 특징"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햄릿의 성별이 중요치 않은 작품이라는 설명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성별이 상관없는 햄릿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니 그걸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끝날 때 객석이 들끓길 바라고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분이 ‘햄릿’을 다시 읽게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연극 '햄릿'은 국립극단의 2020년 공연 라인업에 올랐지만 코로나19로 개막이 무산됐고 2021년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해 이봉련은 햄릿 역으로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오프라인 개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으로 선보이던 때와 다르게 ‘물’을 활용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무대에 설치된 커다란 사각 수조는 "죽음의 공간이자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것이 부 연출의 설명이다. 무대 중앙의 사각 수조 위에서 비가 쏟아진다. 공연은 29일까지.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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