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고영선'이라는 인재가 발굴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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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기자]
▲ 전시 첫날 풍경 전시 작업을 마치고 나서 영상을 찍었다. 액자를 하나하나 차근히 들여다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소박함, 귀여움, 따스함 등이 어머니의 그림을 특징짓는 단어일 것 같다. ⓒ 이진순 |
4월 중순 즈음, 인터넷을 하다가 우당도서관에서 전시 공간을 빌려준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마침 어머니가 지난 2~3년 동안 간간이 그려왔던 그림을 혼자 보기 아깝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전시 대관 신청서>의 '전시 내용 및 주제' 란에 아래와 같이 써서 보냈다.
'90대의 어머니에게 몇 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동시나 동화, 그림책 등을 빌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책에 있는 그림을 색연필로 따라 그리게 되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공공도서관 덕분에 어머니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그림이 전시될 수 있다면, 그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약간의 스토리를 덧붙여 전시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덜컥 전시란 걸 하게 되었다.
'원본 그림과 어머니의 그림을 하나의 액자에 같이 넣고,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자'라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 액자 제작 업체 연락처 하나만 알아놓고서 일을 미루다 보니 6월이 되어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원본 그림을 찾고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씩 느리게 준비해갔다.
어떻게 해야 이 각각의 것들을 하나의 액자에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경험도 편집 능력도 없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 다음은 액자 가게에 가서 의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액자 가게 사장님은 이런 의뢰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고, 그래도 어머니를 위한 작업이니 신경 써서 해보겠다고 하셨다. 시간과 공을 들여 작업해주신 덕에 소박한 그림이 잘 살아나는 액자가 만들어졌다.
▲ 어머니의 그림 전시회 첫날 7월 2일 우당도서관 로비에 어머니의 그림을 전시했다. 정성스런 손길이 닿은 듯한 로비의 분위기와 어머니의 그림이 썩 잘 어울렸다. |
ⓒ 이진순 |
이렇게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으며 전시가 시작되었다. 도서관 로비에 어머니의 그림과 이야기가 담긴 15개의 액자가 놓였다. 전시를 하고 나서야 내가 왜 전시를 하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했던 소소한 시간들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삶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랐다.
도서관에서 만들어준 안내판을 보니 '다양한 재능을 가진 시민들의 작품 전시 지원으로 지역사회 내 인재 발굴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적혀 있었다. 사전을 보면, '인재'는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발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찾아냄'을 말한다. '95세 고영선이라는 인재가 발굴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숨겨진 재주가 드러나는 것, 물론 기분 좋은 경험이다. 어머니의 그림 솜씨를 알아챘을 때 역시 그랬다. 그러나 '뛰어남'에 앞서는 것은 무언가에 빠져 있는 순간 그 자체, 그 순간에 반짝이는 삶의 빛깔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자신만의 삶의 빛깔들을 만들고 그려내며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흥이든 끼든 소질이든 취향이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드러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그 사람다움'이 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잠재력이라는 것은 어린이나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따스함이 있는 곳에서라면 누구에게나 피어날 수 있는 꽃임을 알게 되었다.
▲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어머니 어머니와 가족들이 전시를 보러 갔다. 그림과 글을 유심히 보고 읽으며 기분 좋게 관람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전시를 하게 됐는지 신기해 했다. 도서관 예절에 어긋나게 큰 목소리로 "이게 무사(왜) 여기 이서?"라고 묻고 크게 웃는 어머니 때문에 조금 부끄러웠다. |
ⓒ 이진순 |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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