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은 막고 고령운전 배려하는 일본, 이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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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기자]
나는 일본에 15년째 살고 있다. 지난 4월,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한 뒤 발레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강생은 20명 정도인데 연령대는 유치원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는 분은 미네라는 이름의 72세 여성이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주택에서 남편과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 가끔 자택 앞에서 우리 가족과 마주치면 정원에 핀 꽃 이름도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간식도 쥐어주시는 친절한 분이다.
그런데 6월 들어 발레 교실에서 미네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6월 중순, 3주 만에 복귀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부부가 연이어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했다. 다행히 미네씨는 금방 회복이 됐는데, 폐렴을 앓은 적이 있던 남편 분이 증세가 악화돼 입원을 했었단다.
"아들은 출장 중이고 남편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데, 병원에 가려니 택시가 안 잡히는 거야.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닐까 싶더라고. 우리가 둘 다 면허를 반납했거든. 그 전엔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에 걸린 채로 버스를 탈 수는 없잖아?"
미네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면허가 없는 것은 불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고령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예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 시작한 일본
▲ 안전 장치 의무화 관련 뉴스 화면. 페달에서 발을 떼라는 경고 메세지가 적혀 있다. |
ⓒ 테레토BIZ 유투브 캡쳐 |
해당 장치는 차량이 장애물에서 1~1.5 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킬로 미터 미만으로 속도를 억제해 준다. 차내에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 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된다. "일본 국내 신차 대부분에 이미 오조작 방치 장치가 탑재돼 있기 때문에,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최근 나온 차량들은 대부분 이런 장치가 있다. 하지만 오래된 차라고 해서 꼭 새 걸 살 필요는 없다. 인근 자동차 용품점에 가면 누구나 간단하게 부착할 수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들이 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대도 1만 엔(한화 8만 5천 원)에서 10만 엔(한화 85만 5천 원)까지 다양하다.
가속 페달에 부착하면 바로 사용 가능한 장치들이다. 해당 제품은 차가 정차 중이거나, 혹은 시속 10km 미만으로 주행 중일 때 운전자가 갑자기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경고음이 울린다. 이어 전자 신호를 엔진에 보내지 않게 해, 운전자가 페달을 계속 밟더라도 차량이 급가속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 자동차 용품점에 진열된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 (출처: 중고차 관련 홈페이지) |
ⓒ carsensor.net |
자동차 관련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고령 운전자들 중에는 신체적 혹은 심리적 이유로 면허를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98년부터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를 시행해오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운전 경력 증명서'를 발급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 2019년 이케부쿠로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 |
ⓒ nhk |
그러나 이듬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며 면허 반납률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 경찰청이 올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면허를 반납한 건수는 38만 2957건으로 전년도 비해 6만 5519건 감소, 2019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 일본 경찰청의 포스터로, 2022년부터 고령 운전자의 운전 기능 검사가 의무라는 걸 알리는 내용(원문은 일본어,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이미지번역을 거친 것이다). |
ⓒ 일본 경찰청 |
만약 75세 이상 운전자가 교통 위반 이력이 있으면 실기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데, 여기서 불합격되면 이후에 면허를 갱신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즉 75세 이상 운전자 중 최근 3년간 교통 위반 경력이 있는 고령자는 반드시 국가로부터 '운전 기능 검사'를 거쳐야 운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둔 것이다.
시골 사는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면허를 포기하는 고령자는 많지 않다.
▲ 일본은 2022년부터 고령 운전자의 운전 기능 검사가 의무화됐다. 인지 기능 검사 중인 일본의 고령 운전자들 모습.(BSN 방송 뉴스화면 캡쳐) |
ⓒ BSN NEWS |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고령자, 이건 우리 부부에게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인인 내 남편은 인구 6000명 정도의 시골 출신인데 부모님은 아직 고향에 계신다. 70대인 시부모님은 두 분 다 운전대를 잡으신다. 가까운 슈퍼까지의 거리가 4km는 족히 되는 시부모님에게 차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지자체들은 고령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면허를 반납할 수 있도록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중소도시에서는 한국의 마을버스와 같은 커뮤니티 버스를 잦은 빈도로 운영한다. 어르신들이 무료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을 발행하는 지자체도 있다. 유통망이 확보된 대도시의 경우 어르신들을 위한 택배나 쇼핑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동 판매 차량을 도입하기도 한다.
면허가 없어도 사용 가능한 시니어카도 고령자들의 선택지 중 하나다. 시니어카는 핸들형 진동 휠체어라고도 불리며 최고 속도는 시속 6km 정도다. 가정에서 충전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하면 20~30km 정도 달릴 수 있다.
▲ 시니어카를 타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
ⓒ photoAC |
남편과 나는 가까운 미래에 운전이 힘들어질지 모를 시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생각해보고는 한다. 기술이 극적인 속도로 발달해서 고령의 운전자도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생활 지원 제도가 충분히 보완돼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될까?
최근 한국 서울에서 난 사고를 뉴스로 봤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차 사고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남일 같지 않은 탓에 걱정스럽게 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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