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당도 과반못한 '헝 의회'…"프랑스 정치혼돈, EU 흔들 것"
7일(현지시간) 좌파연합이 1당이 된 프랑스 총선 결과의 파장에 유럽 등 서방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의 핵심 국가이자 EU 내 경제 규모가 독일에 이어 2위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은 이번 총선 결과로 프랑스가 상당 기간 정치적 혼돈에 휩싸여 전과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유럽 및 서방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독일 언론은 "프랑스의 정치적 교착 상태로 독일과 EU는 더는 강력한 파트너로서 프랑스에 의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총선 결선 투표에선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전체 하원 의석 577석 중 182석을 차지해 1당에 올랐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168석을 얻어 2위, 극우정당 국민연합(RN)과 연대 세력은 143석으로 3위에 그쳤다.
어느 정당도 과반(289석)을 확보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확실시되면서 향후 정부 구성과 총리 선출, 의회 운영에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좌파연합 내 최대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 뤼크 멜랑숑 대표는 마크롱의 정당과 연립정부 구성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과 관련 독일 언론은 "마크롱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프랑스의 불안정한 내부 정치 상황을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총선 결과는 프랑스가 다른 유럽국들과 협력해 일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도 "독일·벨기에·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국들과 달리 프랑스는 견해가 다른 정당 간에 복잡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수개월 간 협상한 전통이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서구 언론은 프랑스의 좌파연합이 비교적 친유럽적이며,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결과로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CNN)"고 우려했다. 성향이 다른 세 진영이 주요 정책마다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도 순조롭게 결정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멜랑숑 대표는 그간 하마스를 테러 조직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을 '학살'이라고 비난해 왔다. 때문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두고 프랑스 내 정치적 대립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재집권할 경우 프랑스의 정치적 혼돈 상황과 맞물려 러시아 등에 맞선 서방의 단일대오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재집권 시 나토 일부 회원국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란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다만, 서방의 주요 인사들은 프랑스 극우정당이 승리하지 않은 점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민연합은 그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파리에선 열광, 모스크바는 실망, 키이우는 안도, 바르샤바는 충분히 행복"이라고 썼다. 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프랑스 총선과 중도좌파 노동당이 집권한 지난 4일 영국 총선을 좌파 연정이 구성된 지난해 스페인 상황에 빗댔다. 그는 "이번주 유럽 주요국 두 곳이 스페인이 택한 것과 같은 길을 택했다. 극우를 거부한 것"이라며 "영국과 프랑스는 사회적 진보에 '예'를, 권리와 자유의 후퇴에 '아니오'를 택했다"고 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소셜미디어에 "공화국 만세!"란 짧은 글을 올렸다. 미국 진보 진영의 상징인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극우에 맞서 승리한 프랑스의 좌파에 축하를 전한다"고 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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