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맞대결서 선전한 농구대표팀, 자화자찬은 금물
[이준목 기자]
안준호 감독이 이끄는 농구대표팀이 일본과의 '2024 소프트뱅크컵' 2연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5일 열린 1차전에서 85-84로 승리했던 한국 대표팀은, 2차전에서도 80-88으로 석패하며 1승 1패로 친선전을 마무리했다. 패한 경기에서도 이정현, 유기상, 이원석 등 젊은 선수들의 분전을 앞세워 일본을 마지막까지 괴롭힐만큼 선전했다.
국제경쟁력에서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농구에게 이번 2연전은 모처럼 희망을 되살릴만한 고무적인 성과다. 농구대표팀은 지난해 9월 추일승 감독이 이끌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일본·이란 등에 밀려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에 그쳤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안준호 감독은 귀화선수도 없는 상황에서 평균 연령 25세 이하의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 손발을 맞추고 일본과의 원정 2연전에 나서야 했다.
한때 일본농구는 한국보다 한수아래로 꼽혔지만 현재는 일본이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랭킹은 26위로 50위에 그친 한국보다 크게 앞선다.
하지만 안준호호는 예상을 깨고 일본과 2연전 내내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안준호 감독은 허훈, 라건아, 최준용, 송교창, 전성현 등 기존 핵심선수들이 빠진 빈 자리에 과감한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며 '세대교체'를 선택한 것이 적중했다.
특히 이정현은 대표팀에서도 확실하게 에이스로 거듭났다. 프로 3년차인 이정현은 지난 2023-24시즌 고양 소노에서 평균 22.8점·3.4리바운드·6.6어시스트·2.0스틸, 3점슛 2.9개(37.2%)를 성공시키며 외국인선수급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어시스트와 가로채기는 리그 전체 1위, 득점은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전체 5위였으며, 한국 선수가 리그 평균 22점 이상을 넘긴 것은 2010-11시즌 귀화혼혈선수 문태영 이후 13년만의 대기록이었다.
국제무대에서도 이정현은 통했다. 일본과의 1차전에서 27점·4리바운드·4어시스트·1가로채기, 3점슛 6개(6/11)를 적중시키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이 예상을 깨고 일본에 한때 20점차까지 앞서며 경기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에 역전을 허용한 4쿼터 막판 위기마다 결정적인 클러치샷으로 분위기를 다시 바꾼 것도 모두 이정현의 활약 덕분이었다.
2차전에서도 이정현은 26점 5어시스트 3스틸, 3점슛 6개(6/13)로 공수에서도 모두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이정현이 에이스라는 것을 파악한 일본의 집중수비로 필드골 성공률(45%-42%)은 다소 하락했지만, 두 자릿수 점수차로 벌어지며 패색이 짙었던 4쿼터에 연이어 딥쓰리를 성공시키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경기를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접전으로 이끌었다. 일본의 에이스인 카와무라 유키와의 맞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밖에도 빅맨 하윤기는 1차전에서 일본의 귀화선수 출신 빅맨 조쉬 호킨슨을 상대로 저돌적인 골밑플레이와 운동능력을 과시하며, 동갑내기 이정현과 함께 현 대표팀의 최강 원투펀치임을 증명했다. 2차전에서는 장신 스트레치형 빅맨 이원석(18점)과 3점슈터 유기상(17점)의 깜짝 활약이 돋보였다.
'안버지' 안준호 감독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안준호 감독은 지난 1월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때만 해도 60대의 고령과 13년에 이르는 긴 현장공백기로 인하여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높았다. 하지만 안 감독은 "감독은 나이가 많아도, 팀은 요즘트렌드를 반영한 젊은 농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안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앞세워 빠른 공수전환과 3점슛을 중심으로 한 스페이싱 농구를 선보이며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대표팀은 2승 2패를 기록하고 있다. 데뷔전이자 아시안컵 예선 A조 1차전에서는 세계 수준의 강호인 호주를 상대로 접전 끝에 71-85로 석패했고, 2차전에서는 태국을 96-62로 여유있게 완파했다. 모두가 열세를 예상했던 일본전에서도 1승 1패로 선방했고, 그나마 2차전은 여러 선수들을 고르게 가동하며 결과보다 미래를 대비한 경험을 쌓는 데 집중했다. 선수를 보는 안목과 상대팀에 따라 맞춤형 경기플랜을 짜는데 탁월한 안준호 감독의 장점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졸전으로 농구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던 상황에서, 안준호호의 기대 이상 선전은 오랜만에 한국농구의 희망을 되살리는 고무적인 성과다. 하지 한편으로는 이 정도로 자화자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도 필요하다.
이번 한국전에서 일본 NBA(미국프로농구)리거인 하치무라 루이(LA 레이커스)와 와타나베 유타(멤피스)가 두 경기 모두 출장하지 않았다. 이들까지 정상적으로 나섰다면 경기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농구도 이현중, 여준석 등 해외파는 있지만 현재 세계농구의 주류인 NBA나 유럽에서 뛰고있는 월드클래스급 선수는 없다.
한국과 일본의 또다른 차이는 귀화선수였다. 일본은 조쉬 호킨슨이 1차전 17점 9리바운드, 2차전 34점 14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가드 카와무라와 펼치는 2대 2플레이는 알고도 당할만큼 위력적이다.
하윤기나 이원석이 분전했지만 피지컬과 파워에서 호킨슨을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최근 계약이 만료된 라건아의 빈 자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각국들이 대부분 정상급 귀화선수들을 영입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아직 라건아의 공백을 이을 귀화선수 영입에 대하여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일본농구는 여자농구대표팀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확했고, 남자대표팀은 2023 FIBA 농구월드컵에서 아시아 최고성적인 3승을 거두었으며 48년 만에 파리올림픽본선진출까지 확정지을만큼 상승세가 뚜렷하다.
일본은 확실한 콘셉트와 꾸준한 투자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도 점점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같은 동아시아 계열로 신체조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일본의 상승세는 우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어야 한다.
반면 한국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21세기 들어 단 한번도 올림픽 본선에 나가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홈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을 끝으로는 최근 10년간 농구월드컵 본선, 아시안게임, 아시아컵 등 국제대회 성적이 모두 저조하다.
일본이 세계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한국은 고작 정식 대회도 아닌 평가전에서 일본에 선전했다며 자화자찬해서는 안 된다. 결국 핵심은 연속성과 투자에 있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대표팀 운영 계획과 시스템, A매치 평가전 상설화, 귀화선수 영입, 국제 스포츠 외교력 강화 등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감독과 선수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희망과 희망고문은 그저 한 끗 차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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