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막았지만"…佛총선 좌파연합 1위, 프랑스 정국 '시계 제로'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에서 좌파연합이 예상을 뒤엎고 1당 자리를 차지했다. 앞서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던 극우정당은 3당이 됐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프랑스 정국은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유럽연합(EU)을 사실상 이끌어온 프랑스에서 국정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맞물려 국제 정세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극우에 권력 넘기는 데 뿌리 깊은 저항 드러나”
8일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총선 결선 투표 결과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전체 하원 의석 577석 중 182석을 차지해 1당에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168석, 극우정당 국민연합(RN)과 연대 세력은 143석에 그쳤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 뒤 RN이 1당을 차지할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2차 투표 전 좌파연합과 범여권이 반(反)극우 연대로 선거구 200여 곳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룬 게 대역전극의 발판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권력을 극우로 넘기는 데 대한 프랑스의 뿌리 깊은 저항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뉴욕타임스)는 평도 나온다. 각 진영 유권자들이 막판까지 결집하면서 이번 총선 투표율(66.6%)은 2022년 총선 2차 투표 때보다 20.4%포인트 높았다.
앞서 2022년 총선에서 좌파연합은 131석, 범여권은 245석, 극우는 89석을 각각 얻었다. 2년 사이 좌파연합이 51석, 극우는 54석을 늘리게 된 셈이다. 범여권만 77석 줄었다.
2차 투표 결과 1당이 된 좌파연합 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 뤼크 멜랑숑 대표는 이날 “우리 국민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분명히 거부했다. 국민의 과반수가 극우 세력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 좌파 연합은 집권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정부 운영에 나설 뜻을 밝혔다.
반면 RN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마린 르펜 의원은 “우리의 승리는 늦춰졌을 뿐”이라며 “의원 수를 두 배로 늘렸으니 실망할 것 없다. (극우의) 조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1차 투표 후 차기 총리로 거론됐던 조르당 바르델라 RN 당대표도 “불명예스러운 동맹이 프랑스를 극좌의 품에 던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여권의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할 것”이라면서도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당분간은 직무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도 아탈 총리에게 "국가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 총리직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엘리제궁은 밝혔다. 3주도 남지 않은 파리 올림픽까지는 관리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관례대로라면 마크롱 대통령은 1당을 차지한 좌파연합 출신을 총리로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마크롱은 좌파연합 내 극좌 정당에는 권력을 맡길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마크롱, 좌파·보수파 광범위한 연합 구축 시도?
이에 마크롱이 야권 반발을 무릅쓰고 범여권내에서 총리를 임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RN과 연대하지 않은 우파 공화당(45석 당선)이나 좌파연합 내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사회당 등과 연합을 구축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마크롱은 좌파부터 온건한 보수파까지 확장할 수 있는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하려 시도할 수 있다”며 “아니면 중도 정당, 사회당, 중도우파 공화당 소속 전 총리들에게 기술 관료나 유명 인사로 구성된 정부를 제안해 달라고 요청해 현 사업을 처리하기 위한 일종의 관리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날까지 엘리제궁은 “프랑스 국민의 주권적 선택이 존중되도록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분명한 건 이번 총선 결과로 어느 진영도 과반(289석)을 차지하지 못해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Hung)를 뜻하는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연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에 세 진영은 주요 사안마다 힘겨루기를 할 전망이다.
특히 좌파연합은 식료품 가격 상한제와 연금개혁 철회, 최저임금 인상, EU 재정준칙에 따른 긴축 정책 폐기 등을 주장하고 있어 범여권과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또 서류 미비 이민자를 위한 구조 기관을 설립하고 비자 신청을 용이하게 하겠다고 밝혀와, 이민자 제한과 불법 체류자 추방을 주장하는 RN과 대치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좌파연합의 경제 프로그램은 마크롱의 기업 친화적인 어젠다와 감세 열정에 대한 중대한 단절이 될 것”이라며 “좌파가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후 유로화는 달러 대비 0.3% 하락했다”고 전했다.
극우, EU 동맹 지원 자금 조달 막아설 수도
EU와 미국 등 서방은 프랑스 정국을 주시하고 있다. 앞서 마크롱은 EU 공동 방위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었으나 프랑스 예산 적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RN과 좌파연합이 동맹 지원 프로그램의 자금 조달을 막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좌파연합 안에서도 사회당·녹색당은 EU를 지지하나 LFI는 EU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LFI는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보여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도 분열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르몽드는 선거 결과에 대해 “프랑스가 명확한 과반이 없는 정지 의회를 갖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며 “마크롱은 연정 구성을 위해, 오랫동안 자신을 반대해 온 정당들과 협상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NYT는 “프랑스 선거는 좌파 급증과 극우파 득세로 교착상태를 초래했다”며 “흔들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민족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메시지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의 장기화된 정치적 난국이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FT도 “프랑스가 독일과 함께 EU 블록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프랑스와 EU 모두에 영향을 미칠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기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우의 득세를 막기 위해 조기 총선 카드를 던졌던 마크롱의 승부수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텔레그래프는 “이번 총선 1차는 마크롱을 심판하려는 국민 투표, 2차는 RN 집권에 대한 찬반 투표 성격을 띠었다”며 “마크롱의 조기총선 승부수가 극우 집권을 부분적으로 저지했지만, 권력의 중심축이 의회로 이동하면서 남은 3년 임기 동안 권력 누수로 이어지는 레임덕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CNN도 “마크롱의 ‘도박’이 극우의 권력 장악을 막았으나 프랑스를 혼란에 빠트렸다”고 평했다.
한편 RN은 극우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주도로 결성된 유럽의회 새 정치그룹(교섭단체)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Patriots for Europe)에 8일 합류했다. 앞서 전날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총선 결과가 나온 뒤 "내일부터 우리 유럽의회 의원들이 이주민 유입과 징벌적인 환경 보호주의, 주권 몰수를 거부함으로써 유럽의 권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대형 정치그룹에 합류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RN은 지난달 프랑스에서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30석을 얻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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