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아빠를 로봇으로 복제, 엄마와 딸의 온도차

조영준 2024. 7. 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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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68]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메모리>

[조영준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메모리>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모든 탄생과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그 순간에 헤어질 때의 장면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한한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정확하고도 단일한 사실이다. 이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존재의 생이 다해 사별하는 경우나 관계의 종말로 인해 남아있는 시간 동안에 완벽한 단절을 선언하며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그중 하나일 수 있다. 때로는 개인의 의지나 뜻과는 무관하게 잃어버리게 되거나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쪽이든, 나라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보자면, 어떤 상황에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존재는,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생의 종말, 죽음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상태와 무관하게 자력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작품들에서 이제 만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남은 사람들의 감정이 소재가 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대체하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인간의 탐욕과 헛된 희망의 새로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과 무관하게 아직 떨쳐내지 못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미련을 안은 존재의 모습은 가슴 한 구석을 강하게 관통하는 면이 있다. 다시,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이별한 경험을 안고 있어서다.

02.
"진짜가 돼 저게? 진짜가 되냐고."

영화 <메모리>에 등장하는 시우(박경은 분)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빠 도준(조형래 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가정용 복제 로봇을 통해서다. 문제는 엄마 지연(김영선 분)이다. 딸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기억으로 매일 힘들어하지만 진짜가 아닌 로봇을 통해 존재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동의가 없으면 로봇을 정식으로 계약하기는 힘들다. 지금으로서는 3일 동안 제공되는 체험만이 가능할 뿐이고, 딸 시우는 엄마가 그렇게라도 외형은 물론 행동까지 아빠와 동일한 로봇에 마음을 열어주길 바란다.

로봇을 바라보는 이 작품의 시선은 두 가지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누군가를 대체하는 금속 물성인 로봇을 대하는 이들이 갖는 서로 다른 태도다. 로봇을 통해서라도 잃어버린 존재와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시우와 그렇지 않은 지연의 모습. 분명한 것은 이 차이가 두 사람이 도준이라는 인물, 이제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동일한 감정과 다른 태도. 이것은 감정이 아닌 위치와 역할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엄마 지연이 남편 도준을 닮은 로봇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감정적인 부분 외에도 하나가 더 영향을 미친다. 로보틱스 이론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와 연관된 부분이다. 실제로 그녀는 상의도 없이 딸이 집안으로 들인 로봇을 앞에 두고 생각보다 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자신의 배우자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 때문이다. 로봇의 모습이나 행동 자체는 사진과 딸의 기억에 기댄 인터뷰에 근거한 프로그래밍일 뿐이지만, 지연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메모리>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3.
또 다른 하나의 시선은 로봇이 아닌 아빠 도준을 대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태도에 놓인다. 아빠의 기억이 담긴 로봇을 통해서라도 내면에 갇힌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 딸과 달리 엄마 지연은 자신이 겪어야 할 시간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외부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지 않는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이를 해소하는 방식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영화는 이 부분을 내러티브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로봇의 정식 계약을 위한 조건으로 활용한다. 가족 모두의 동의가 없이는 정식 계약을 할 수 없으며, 체험판 로봇만으로는 고인의 모든 기억을 재현할 수 없다는 제한적 요소를 마련하면서다.
이 제한적 요소로 인해 딸 시우는 엄마 지연의 동의를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 하는 과정에 놓인다. 자신의 인터뷰에 근거한 기억만으로는 아빠라는 인물의 전부를 완성해 낼 수 없고, 딸로서는 알 수 없는 도준의 또 다른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기억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3일의 체험 기간을 신청하고 난 다음에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생긴다. 체험판 이후 정식 계약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로봇은 재활용 과정을 거쳐야만 해서다. 이때 아빠에 대한 기억이 담긴 메모리는 폐기되고, 로봇 자체는 외형을 바꿔 다른 의뢰에 활용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대상을 아빠의 분신으로 여겼을 시우에게는 두 번의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메모리>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4.
"같이 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게 아니야. 간직해 주면 돼."

시우의 제안으로 시작된 세 가족의 재회는 3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던 엄마도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을 보면, 역시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을 뿐, 남편의 빈자리에 대한 갈망은 딸과 다름없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자신을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근거가 기억이라던, 그 기억을 담아 일상으로 되돌려 주겠다던 클레이오 센터의 아바타(배두나 분)의 말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세 사람이 그렇게 안정을 되찾아갈 때쯤 아빠의 모습을 한 로봇은 작동을 멈춘다. 모두가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현실이 이 작고 투명한 메모리칩 하나로 완성된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러닝타임 전체를 전복시키는 장면 하나가 놓인다. 다만 장면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오버랩이 되는 또 다른 두 장면의 만남이 큰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아빠 도준의 연명 치료 중단 결정에 대한 환자가족 동의서 앞에서 망설이는 모습의 딸 시우이고, 다른 하나는 딸과 함께 방문한 클레이오 센터에서 정식 계약을 위한 서류 앞에서 망설이는 엄마 지연의 모습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문제가 양쪽에 놓인다. 떠나보내야 하는 이를 놓을 수 없는 이들의 슬프고도 간절한 마음이다. 이별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될 모습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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