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출신 감독 2명 거절한 축구협회의 이유는? "선수들이 단기간에 철학 소화 못한다"

김정용 기자 2024. 7. 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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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해외 출장까지 다녀온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출신 감독보다 홍명보 울산HD 감독을 높게 평가한 이유는 뭘까.


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선임 관련 브리핑을 진행했다. 축구협회는 앞선 7일 홍명보 울산HD 감독을 대표팀 신임 사령탑으로 내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최근 이 기술이사가 유럽 출장을 통해 면담했던 두 감독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공개했다. 후보 중 하나는 다비트 바그너 전 노리치시티 감독이다. 미국계 독일인인 바그너 감독은 허더스필드타운을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서 PL로 승격시켜 한 시즌 잔류까지 이끌었던 게 가장 눈에 띄는 경력이고, 보루시아도르트문트 2군, 샬케04, 영보이스 등을 거쳤다. 나머지 한 명은 거스 포옛 전 그리스 대표팀 감독이다. 2009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해 바그너보다 경력이 길다. 선덜랜드 시절 PL 호성적과 리그컵 준우승 성과를 냈고, 당시 기성용을 선수로 잘 활용했다. 이후 AEK아테네, 레알베티스, 상하이선화, 보르도, 카톨리카를 거쳐 그리스 대표팀과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이 기술이사는 6월 말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사임한 뒤 이 업무를 이어받았다. 브리핑에서 밝힌 일정으로는 "7월 2일 제가 유럽으로 출국했다. 3일 마드리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후보자 한 분과 미팅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힐튼 호텔로 이동해 4일 또 한 분의 후보자와 미팅 후 바로 귀국했다. 5일 금요일 경기 후 밤 11시 홍명보 감독님을 만났다. 다음날 오전 9시에 홍명보 감독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토요일부터 울산 김광국 대표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며 두 외국인 감독과 접촉한 뒤 곧바로 홍 감독 선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인물이 포옛,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인물이 바그너로 보인다.


두 후보의 결격사유나 협상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으며, 순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둘 다 탈락시켰다고 말한 이 기술이사는 "후보자들이 열심이었고 한국에 오고 싶어 했다. 연봉도 받아들였고 아무 문제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두 인물의 축구철학이 너무 확고한데 한국 선수들이 빠르게 소화하기 힘들 거라는 이 기술이사의 판단이었다. 그는 "그들의 고유 축구 철학이 굉장히 확고했다. 저는 이 분들의 축구철학이 한국축구에 맞고 적응이 될까 의문이 있었다. 한 분(포옛)은 벤투 감독처럼 빌드업하고 기회창출을 하려는 우리 대표팀과 맞지 않았다. 롱 볼 후 빠른 서포트로 경쟁하는 축구였기 때문에 맞을까 의문이 있었다. 다른 한 분(바그너)은 하이 프레싱과 인텐서티 프레싱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그 분들의 철학을 존중한다. 그런데 한국이 빌드업으로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데, 프레싱에 대한 철학을 가진 분의 축구를 우리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게 맞는가? 수비라인을 너무 끌어올리다보면 중동 국가에 카운터 어택을 맞은 어려움이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또한 대표팀 소집이 한 번에 10일인데 선수들이 이들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이 머릿속에 멤돌았다"고 말했다.


즉 포옛 감독은 롱 패스 후 흔히 말하는 세컨드볼을 따내는 식으로 공격전개를 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이 문제라는 시각이다. 바그너 감독의 경우 친구인 위르겐 클롭 전 리버풀 감독과 마찬가지로 게겐프레싱과 '헤비메탈' 계열 감독이다. 강한 압박을 선호한다. 이런 축구가 아시아 무대에서 통하지 않으면 아예 월드컵 본선진출도 힘들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국 선수들이 짧은 시간 동안 큰 폭의 방향 전환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축구 기술적으로 접근할 때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분석 내용들이다.


일단 한국 선수들이 새 감독의 철학을 빠르게 소화하기 힘들다는 생각부터 의아하다. 이 기술이사는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한국의 축구 스타일을 '빌드업 축구'라는 한국 축구인들끼리 이름 붙인 브랜드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빌드업을 길고 지리하게 하는 스타일을 추구한 적은 없다. 의도성을 갖고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축구가 당시의 목표였고, 의도성 분명한 벤투식 빌드업과 공 없을 때도 경기를 주도하려는 바그너식 압박은 큰 틀에서 주도적 축구의 다른 방법론이다. 체계가 없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식 축구에 비하면 벤투와 바그너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바그너식 압박이 마르셀로 비엘사 현 우루과이 감독의 방식처럼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압박 방식에 기초하기 때문에 빠르게 이식하는데 문제는 없다.


홍명보 감독(울산HD). 서형권 기자
다비트 바그너 노리치시티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거스 포옛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홍 감독의 축구가 벤투 감독 때부터 이어온 축구 방식과 일맥상통한다는 분석도 공감을 사기 힘들어 보인다. 홍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상식적이고 단단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별 특징은 없다. 주도권을 추구하면서 때로는 4-1-3-2 같은 극단적인 대형까지도 실험했던 벤투 감독과 그다지 유사한 점이 없다. 이 기술이사는 울산의 빌드업 관련 지표가 K리그1 1위라는 점을 들어 울산을 '빌드업 축구'라고 규정했지만, 사실 팀 스타일과 별개로 리그 내 최고연봉 최강팀은 원래 점유율이 높게 나오고 빌드업 관련 지표가 좋을 수밖에 없다.


더 의아한 것은 두 감독이 탈락한 이유가 면접과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이다. 감독의 전술성향은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앞서 분석할 때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굳이 유럽까지 가지 않고 최종후보 선정 과정에서 탈락시킬 수도 있는 이유들이다. 빈약한 설명 때문에 '유럽에 간 게 요식행위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홍 감독 선임은 현재 대표팀 상황에 퍽 적합해 보인다. 울산 감독을 빼온다는 절차적, 상황적 문제를 떠나 인물만 본다면, 전술적 장점이 아닌 리더십과 현실적 문제만 들어도 납득할 수 있는 인사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전술적으로도 홍 감독이 최적이라고 다소 무리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놓고 홍 감독에게 유럽 코치 2명을 붙여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겠다는 모순적인 계획을 동시에 밝혔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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