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부리지 않은 '핸섬가이즈'의 현명한 선택
[고광일 기자]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없다. 슬래셔 장르가 국내에서 흥한 적이 있었나. 거기에 오컬트까지 끼얹다니. 물론 최근에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하긴했지만 오컬트 또한 슬래셔와 같이 손에 꼽는 마이너 장르 중에 하나다. 남동협 감독의 데뷔작 <핸섬가이즈>는 상업영화에서 피하는 장르를 두 가지나 섞었다. 야구로 치자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나쁜 공에도 스윙하는 극단적인 배드볼 히터라고 볼 수 있다.
배드볼 히터에게는 편견이 있다. 투수와의 수싸움을 통한 두뇌플레이, 스트라이크 존의 깻잎 한장까지 구분하는 눈야구 대신 타고난 신체능력과 동물적인 감각으로만 먹고 산다는 것이다. 투수가 한 가지 구종만 던지는 건 아니다. 마운드에 오른 게 배팅머신이 아니라면 묵직하는 꽂히는 직구, 타이밍을 빼앗는 변화구를 홈플레이트 구석구석 던질 것이다. 그렇다면 배드볼 히터가 어떤 공도 쳐낸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어디든 자신의 배팅존이라는 뜻 아닐까.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먼저 스윙하지 않기
배드볼 히터에게도 영 아니다 싶은 공은 걸러내는 참을성은 필수다. <핸섬 가이즈>의 미덕은 욕심을 부리지 않기다. 코미디 장르를 표방한 한국영화의 단점 중 하나가 관객보다 먼저 웃는 거다. 말하자면 공이 홈플레이트에 오기도 전에 스윙을 해버리는 것. 웃기려고 작정하고 나온 조연 캐릭터, 웃기려고 용을 쓰는 끝없는 말장난에 스크린 속 인물들은 코믹 무드로 넘실대지만 관객의 입꼬리는 굳게 닫힌다.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꼬챙이에 가슴팍이 뚫리고, 전기톱에 몸이 썰리고, 얼굴이 대못에 박히는, 관객에 따라서는 끔찍하게 보일 수 있는 슬래셔 장르가 다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왜 다들 우리 집에와서 죽고 난리야"라는 메인카피는 이를 함축한다. 재필과 상구의 주변에선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오히려 선의를 갖고 도와주려고 할 뿐이지 그들이 악의를 갖고 사람을 해치는 순간은 전혀 없다. 잔혹극이라기보다 일종의 정당방위에 가까워 심리적 면죄부를 발급하기 쉽다.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
배드볼 히터의 핸섬한 안타
리메이크의 한계가 없지는 않다. 원작에서 험악한 인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터커와 데일의 외양은 확실한 레퍼런스가 있다. 체크남방과 청바지. 오랜 농사일로 목뒤가 벌겋게 익어버린 미국 중부의 레드넥이다. 굳이 상종하고 싶지 않은 거칠고 고집불통의 캐릭터가 오해를 받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런 사회적 맥락이 장르 비틀기와 결합되어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핸섬 가이즈>는 이런 사회적 맥락이 소거된 채 단지 외모지상주의에만 편견 섞인 시선을 집중시킨 느낌이다.
물론 지역차별이 다소 누그러지는 한국사회에서 미국의 레드넥처럼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스테레오타입을 찾기는 어렵다. 미지의 힘이 작용하는 오컬트의 힘을 빌려 피치못할 사건의 전개에 핍진성을 부여한 건 뛰어난 판단이었다. 다만 도농갈등이 격화되고 세대갈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편견에 대한 화두를 제기했다면 더 완벽한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핸섬 가이즈>는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손익분기점이 100만 관객으로 높지는 않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홈런 아니면 병살타로 양극화 된 한국영화계에서 오랜 만에 보는 기분 좋은 안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이자 배드볼 히터의 대명사인 요기 베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칠수 있으면 그건 좋은 공이다".
영화도 다르지 않다. 흥행코드가 대중성을 결정짓는 게 아니다. 자신이 잘 만들 수 있는 영화라면 그게 바로 흥행 장르가 된다. 좋은 공을 잘 친 핸섬한 배드볼 히터의 더 큰 선전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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