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미·중 긴장, 美불안감 탓…전쟁에 가까워져"
"미국의 접근방식은 모두 실패하고 있다. 중국을 '봉쇄'하지 못하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경제적 안녕과 세계 경제의 효율성을 낮추고, 세계 경제를 분열시키고,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세계적 경제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최근 고조되고 있는 미·중 긴장이 힘의 약화를 두려워한 미국의 탓이라며 대중국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참견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삭스 교수는 8일 공개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미·중 긴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힘이 약화하고 있다는 (미국의) 불안감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미국 정책 결정권자들이 방어적이고 두려움에 차서 종종 매우 현명하지 못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국 봉쇄정책을 시작했다면서 대표적인 예로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도체 등 첨단제품을 대상으로 한 수출금지 조치, 무역장벽 강화, 남중국해의 군사화 강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같은 새로운 군사 동맹 등을 언급했다.
또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모두 실패라고 본다"면서 이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고 경제적 후생과 경제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전쟁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중국산 전기차 등의 과잉생산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과 달리, 삭스 교수는 "과잉 생산이라는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고 중국산 전기차 시장이 상당히 닫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국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 EV 시장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유럽 전기차 제조사들은 신흥국·개도국과 같은 제3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와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삭스 교수는 "중국은 태양광, 풍력, 모듈형 원자력, 장거리 송전, 5G, 배터리, 전기차 등 이미 다가올 25년 동안 필요한 주요 기술 중 많은 분야에서 최첨단에 있다"면서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 만큼 중국의 시장은 아시아, 러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중국의 무역 및 금융 관계가 신흥국과 개도국으로 점점 기울어질 것이라며 브릭스(BRICS)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이미 주요 7개국(G7)보다 크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간 공식 석상에서 탈패권주의 성향의 발언을 해온 삭스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21세기에는 그 어떤 나라도 패권을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군사적 역량이 멀리 퍼져있고, 인구통계학 추세를 고려할 때도 단일 패권국에 불리하다"면서 각 국가가 지역적으로 각각의 역할을 가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현재 세계 인구의 약 18%를 차지하지만 2100년에는 10%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로 인해 인당 소득 수준은 계속 높아지지만,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의 대선이 향후 미·중 관계에 미칠 여파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삭스 교수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중) 관계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의 딥스테이트는 중국의 성공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가 언급한 딥스테이트는 백악관, 국방부, 정보기관, 의회 등을 포함한 미국의 안보기관들을 가리킨다.
아울러 그는 "(미국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모두 중국에 대해 얼마나 강경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면서 의회에서도 대다수가 위험한 반중국 수사에 의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대만 개입과 관련해서는 "참견(meddling)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참견이 없다면 양측(중국과 대만)에 의해 (대만 문제가) 평화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 언론에선 최근 중국과의 전쟁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이는 끔찍할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지하며 위험하다"면서 "이러한 전쟁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 가능성에 대한 가벼운 논의조차도 신중함, 판단력 부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또한 앞서 미국이 러시아의 반대를 무시한 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우크라이나로 밀어붙인 것이 전쟁을 초래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대만해협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삭스 교수는 세계화의 종말, 세계 경제의 분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세계화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미국, 유럽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부상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면서 보호주의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있다"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확실히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미국이 단극 세계를 이끌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망상이 갈등이 커지는 이유"라고도 비꼬았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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