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영광 기자]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
ⓒ 신지영 제공 |
2021년 출간한 책 <언론의 높이뛰기>로 많은 사랑 받은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지난 5월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이란 신간을 출간했다.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말하기의 힘'이라는 부재가 붙은 이 책은 언어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와 함께 언어의 감수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이 들어있다.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이란 책을 왜, 어떻게 출간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지난 3일 서울 용산역에서 저자인 신지영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신 교수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모든 관계는 말을 통해 유지...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야"
- 2021년 <언어의 높이뛰기> 이후 3년 만에 <신지영 교수의 언어의 감수성 수업>이란 책을 출간하셨어요. 소회가 어때요?
"많은 사람들이 되게 기다렸다는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많이 좋아해 주시고 격려와 응원해주셔서 저도 놀랐어요. 사실 대중서를 쓰는 게 저한테는 좀 힘든 일이긴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 이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었나요?
"사실 <언어의 높이뛰기> 이후 많은 출판사들로부터 책 같이 내 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근데 제가 책 한 권을 쓰는 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그 요구에 다 응하지 못했습니다. <언어의 높이뛰기> 이후 조금씩 글감을 모으고 초고가 될 짧은 글들을 모으고, 메모해 두었던 것을 기초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실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적인 언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말하기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학교에서 말하기를 구체적으로 배워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또,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말하기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말하기의 중요성, 언어의 중요성을 더 절감하게 되는데도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전작인 <언어의 높이뛰기>를 통해 언어 감수성의 중요성은 얘기했지만, 현실에서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 현실적 방법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도 이 책을 내게 하는 데 한몫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양한 언어 상황에서 언어 감수성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했습니다."
- 학교에서 말하기를 안 배운다고 했잖아요. 왜일까요?
▲ <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의 표지 |
ⓒ 인플루엔셜 |
- 안 배우고 말하는 거와 배워서 말하는 게 다를까요?
"만약에 배우지 않고도 말을 잘할 수 있다면 국어라는 과목 자체가 필요 없을 겁니다. 국어 교육을 통해 우리는 네 가지 핵심 언어 능력인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배웁니다. 국어 교육을 받지 않고도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어 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워서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더 관심을 두어야 하는 건 전달력 높은 말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보다 '관계의 관점에서 말하기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인데요, 모든 관계는 말을 통해 맺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는 좋은 말 하기를 통해 맺어지고 유지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을 잘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여야 합니다."
- 아이들 웅변 학원이 있잖아요. 웅변은 어떤가요?
"웅변은 말하기의 한 종류입니다. 말하기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죠. 대화처럼 쌍방향적인 것도 있고 발표처럼 일방향적인 말하기도 있습니다. 웅변은 자기 생각을 남에게 조리 있고 막힘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말하기죠. 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더 많이 하는 말하기의 유형은 상호작용이 있는 말하기입니다. 그러나 대화 학원은 없죠.
웅변이든 대화든 우리는 말하기 공부를 다분히 기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듯합니다. 말을 잘해서 자기 생각 잘 전달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상대의 마음 사는 기술 말입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책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가 바로 말을 잘해야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계의 중심에 바로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맺어진 관계를 빼고 모든 인간관계는 다 말로 맺어집니다."
- 왜 언어 감수성이 필요할까요?
"언어 감수성이라는 건 언어에 대한 민감도입니다. 말이라는 건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 하는 거죠. 그럼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민감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계가 있는 말에는 민감하지만, 자신과 관련이 없는 말에는 둔감하죠. 그러니까 내 말이 잘 들리려면 상대의 감수성으로 내 말을 생각해야 해요. 내 말이 어떻게 상대에게 들릴까 혹시 내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게 언어 감수성입니다."
- 언어 감수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어 감수성을 딱딱하게 정의하면 언어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어서 언어에 숨어 있는, 내가 원치 않는 요소들, 즉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요소, 비민주주의적 요소를 감지할 수 있는 민감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 감수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성찰하고 용기 내야 합니다.
첫째는 공부해야 합니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언어에 대해 이해해야 하니 언어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성찰해야 합니다. 공부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뒤돌아 살펴야 합니다. 내 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왜 저 사람이 내 말을 불편하게 생각했을까, 나는 어떤 말을 했고 저 사람은 어떤 말을 했는데 내 말이 왜 저 사람에게 저렇게 들렸을까 같은 것들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찰을 통해 발견된 자신의 언어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변화를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해석의 차이 때문일까요?
"그렇죠. 그 해석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바로 언어 감수성의 차이에서 옵니다.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다르니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상대는 완전히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주신다면?
"예를 들면 우리는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귀가 쫑긋 예민해집니다. 자신하고 관련된 것에 사람들은 굉장히 민감해집니다. 하지만 자신하고 관련이 없는 것에는 굉장히 둔감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민감도 차이가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 고려대학교 교수인 저는 고려대학교와 관련되는 얘기가 오면 귀가 쫑긋해지는 것처럼요. 또 저는 여성이니까 여성 이슈에 아무래도 남성들보다 예민하죠."
"호칭과 존댓말 중시... 한국 사회는 아직도 수직적"
- 관심 차이인가요?
"그렇죠. 관심을 가진 만큼 민감도가 올라가게 되는 거죠. 또 민감도는 말할 때와 들을 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들을 때 더 민감해지죠. 말할 때는 바쁘잖아요. 자신의 습관적인 말들이 나와서 실수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반면에 들을 때는 여유가 있는 만큼, 상대의 말에서 특히 듣기 싫은 부분이 더 민감하게 들리게 마련입니다."
- 민주사회에선 소통이 중요한데, 우리는 소통을 잘하고 있는 걸까요?
"소통을 잘하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소통은 수평적이어야지 잘 일어나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수직적입니다. 사실 우리 언어 자체가 굉장히 서열적이고 수직적인 것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댓말과 반말이 있고 호칭어도 수직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언어가 사람의 서열 관계를 가르치고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 근데 존댓말에는 존중하는 느낌을 준다는 장점도 있잖아요.
"그런데 반말도 있잖아요. 반말은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 아니죠. 그러니까 존댓말과 반말이 존재함으로써 누구는 존댓말을 통해서 존중 받는 사람과 반말을 통해서 존중 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존댓말의 순기능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반말의 역기능은 없을까라는 질문도 던져야 합니다."
- 존댓말 문화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무조건 없애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우선 우리가 존댓말을 쓸 대상과 반말을 쓸 대상 결정하는 기준이 뭔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 나이죠.
"맞습니다. 근데 과거에는 신분이었죠. 그러니까 그 기준이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나이가 꼭 사람의 서열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까를 질문해야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해 봐요. 몇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에요. 70대의 손님이 편의점에서 20대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로 담배를 주문했어요.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생이 처음 보는 사람이 반말을 쓰는 데 불쾌감을 느껴서 상대에게 반말로 대답했어요. 그 말을 들은 70대 손님은 화를 내면서 막 욕을 하며 노발대발했죠. 경찰이 출동했고 70대 손님은 모욕죄로 형사 고소가 됐어요. 1심에서 모욕죄가 성립돼서 50만 원 벌금형이 내려졌죠. 70대 손님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50만 원 벌금형을 확정했어요. 만약에 그게 30년 전이었다면 재판부가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요?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그 변화가 언어에 반영되고 있어요."
- 호칭에 대한 얘기도 나오잖아요. 호칭이 왜 중요할까요?
"한국어의 특징과 관련이 있어요. 한국어는 너를 너라고 부르기 어려운 언어요. 그래서 너 대신에 쓸 말이 필요하고 그게 호칭어예요. 이 호칭어는 상대와의 관계를 내 입으로 고백하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이영광 기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는 당신을 기자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런데 내가 '이영광씨'라고 한다면 나는 당신을 기자가 아니라 그냥 '이영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대한다는 것을 드러내죠. 때문에 호칭어에 우리가 민감할 수밖에 없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상대가 부르는 호칭어가 다르면 말의 시작부터 마음이 상하게 되죠. 그래서 호칭어가 한국어에서 굉장히 중요하죠."
- 책에는 우리나라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만나면 나이 묻는다고 나와요. 나이를 알아야 서열이 결정나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한국어는 서로의 서열 관계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래서 서로의 서열 관계를 정해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서열의 기준이 현재 나이입니다. 그리고 말할 때 호칭이 필요한데 그 호칭을 결정하는 데도 나이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상대의 나이 정보를 알려고 하고 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
-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말을 잘해야 행복해진다, 그리고 혼자 오래 사는 미래에 외로움과 고립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의 관점에서 말하기를 다시 배울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관계에서 나는 자석이 되는 말, 아니면 사람을 밀어내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공부하고 성찰해서 용기 있게 받아들여 말을 통해 내 삶과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 핵심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 소리>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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