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통합 논란이 불러온 지명 관심, 완주가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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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와 전주 통합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통합추진 세력 측은 완주와 전주가 통합될 경우 지명이 당연히 '전주'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전주'보다 '완주'라는 지명이 먼저 쓰였기 때문에 완주·전주를 통합해 전주시로 만든다는 주장도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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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신문 유범수]
▲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군현지도(郡縣地圖)에 수록돼 있는 전주부(왼쪽)와 고산현 지도 |
ⓒ 완주신문 |
통합추진 세력 측은 완주와 전주가 통합될 경우 지명이 당연히 '전주'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을 반대하거나 완주군 일각에서는 통합이 되더라도 '완주'라는 지명을 쓰는 게 옳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완전할 완(完)과 온전할 전(全)은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르다. '완전'은 명사로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이고, '온전'은 형용사로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지명으로 쓰기에는 사전적 의미상 '전(全)'보다는 '완(完)'이 적합해 보인다.
먼저 전주시청 홈페이지 지명 유래에 따르면 전주의 옛 지명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에는 '완산주(完山州)'라 하였는데, 서기 757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경덕왕 16년부터 '전주'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완주군청 홈페이지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으며 555년(백제 위덕왕2) 완산주가 설치됐으나 565년 완산주를 폐지했다. 660년(의자왕20) 백제가 무너진 뒤 신라에 병합돼 685년(신문왕5) 완산주가 설치됐으며, 이때부터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됐다. 757년(경덕왕16) 전주로 바뀌었고 완산정이 설치돼 군사상의 중심지로서 중요시됐다.
즉, '전주'보다 '완산주' 지명이 앞선다는 것이고, 전주의 옛 이름은 완산주가 분명하다.
▲ 완주군청 홈페이지(왼쪽)와 전주시 홈페이지에 소개된 지명 유래 |
ⓒ 완주신문 |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 1945년 해방 전까지가 일제강점기이기에 고산군과 전주군을 합친 것도, 전주읍을 분리한 것도 모두 이 시절에 이뤄진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파문을 일으킨 완주역사복원추진위원회 나유인 위원장의 '통합반대 친일' 주장은 사실이 되기 어렵다. 현재 전주지역과 완주지역을 분리한 게 일제인 것처럼 과거 전주군와 고산군을 통합한 것도 일제다. '역사를 복원한다'는 주장은 '복원 시점을 언제로 하느냐'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동시에 '전주'보다 '완주'라는 지명이 먼저 쓰였기 때문에 완주·전주를 통합해 전주시로 만든다는 주장도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더군다나 1935년 전주와 완주 분리 후 수차례에 걸쳐 완주 땅을 전주로 편입한 것도 '복원'의 의미를 상기시키면, 전주시에서 추진하는 통합에 대한 완주군의 거부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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