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탄 곳에 수목원 말고 골프장? 답답하네"
[이재환 기자]
▲ 지난 6일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의 한 야산. 홍성산불이 발생했던 이 산에는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다. 묘폭에는 하얀색 표식이 돼 있다. |
ⓒ 이재환 |
지난해 충남 홍성 산불 피해 지역에 한 업체가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지역에서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홍성군 서부면 중리에서 시작된 화재는 서부면 전체 면적의 26%인 1454ha(헥타르)를 태우고 사흘 만에 진화됐다. 이는 축구장 2300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기자는 장맛비가 쏟아지기 직전인 지난 6일 오후 홍성군 서부면 일대를 돌며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자연 복원이 아니라 골프장을 짓는다니 배신감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홍성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훌쩍 넘긴 요즘, 서부면 산불 현장에서는 산림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이날도 산불 발화지점 인근인 서부면 판교리의 한 야산에서는 인공조림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도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었다. 자연복원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
판교리 야산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인공조림을 하고 있다. 산림청 예산을 지원받아 나무를 심고 있다. 산 아래쪽에는 소나무를 심고 위쪽에는 편백 나무를 심고 있다"면서 "소나무가 풀로 덮이면 보이지 않아서 (하얗게) 표시를 해놨다. 씨앗에서 발아한 뒤 2년 정도 된 묘목"이라고 설명했다.
취재원을 만나고, 탐문을 이어가면서 골프장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자연복원 혹은 수목원 조성 등을 내심 기대했던 일부 주민들은 "배신감이 느껴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산림청은 1996년 고성 산불 이후, 산불 지역 복원 시 인공복원(인공조림)뿐 아니라 자연복원도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공조림 대신 자연스럽게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직도 산불 트라우마 겪고 있는데, 골프장 짓겠다고?"
주민 A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다가 7년 전에 서부면으로 귀촌했다. 지난해 산불 때 생긴 트라우마가 심각하다. 지금도 창문 커튼을 다 내리지 못하고 반만 내리고 잔다(창밖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 창밖에 산불이 어른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산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른 곳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참고 있다."
골프장 건설 소식에 대해서도 A씨는 "골프장은 농약 오염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남당항과 같은 기존의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면 될 텐데, 굳이 골프장을 지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골프장은 폐업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안다"라며 "요즘은 골프를 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 친구도 해마다 여름이면 태국에 간다"고 말했다.
▲ 충남 홍성군 남당항 인근. 홍성 산불 현장, 바닷가를 배경으로한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어 논란이다. |
ⓒ 이재환 |
남당한 인근에서 만난 B씨도 "당연히 골프장 건설을 반대한다.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물이나 농약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안다. 또한 그 넓은 부지에 골프장을 만드는 것 자체 낭비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차라리 그곳에 수목원을 만들면 관광객이 더 많이 오지 않을까 싶다. 자연 그대로의 복원을 기대했는데 골프장이라니 답답할 뿐이다. 물 부족과 농약 살포 문제 등 군에서는 반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
요즘 어촌 마을 주민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B씨는 "가뜩이나 이상 기후 현상이 심각하다. 바닷가에 살면서 심각한 기후변화를 느끼고 있다"며 "횟집의 경우, 장마철이 되면 염분이 낮아져서 수족관(바닷물 사용)에 있는 물고기가 죽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지하수 공급도 불안한데..."
식수 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민 C씨는 "얼마 전 한 지역 언론의 기사를 봤는데, 군에서 산불지역에 대해 자연 복원을 한다고 해서 안심했다"면서도 "하지만 갑자기 골프장을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골프장은 지하수를 많이 쓴다. 가뭄이면 대한민국 전체가 물 부족을 겪는데 골프장이 웬말인가 싶다. 서부면은 지하수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일부 마을은 관정을 파서 지하수로 마을 상수도를 쓰고 있다.
우리 집도 마을 상수도인데, 얼마 전부터는 갑자기 물이 잘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하수 공급이 가뜩이나 불안한데 골프장까지 짓는다면 물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광역상수도 설치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는 "고령의 주민들이 많다 보니 아직까지는 골프장 건설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아 아쉽다"라며 "한편으로는 내포신도시나 홍성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함께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골프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타져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크게 확산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서부면 토박이인 D씨는 '고령화 문제' 외에 또다른 분석을 내놨다.
"산불 직후 불에 탄 야산의 (부동산) 가치가 떨어졌다. 임야를 처분하고 싶어 하는 일부 산주들의 입장에서는 골프장 건설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이번 기회에 산을 팔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안다. 어차피 주변에 축산단지가 많다 보니 환경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결국 골프장 인허가권을 가진 홍성군에 공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홍성군 관계자는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재 서부면에 관광시설을 짓고 있다. 홍성군에 골프장이 하나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홍성군의 입장"이라고 밝혔었다.
[관련 기사]
화마 할퀸 곳에 골프장?... 홍성군 쪽 반응 들어보니 https://omn.kr/298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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