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부닥쳐 죽는 새, 한 해 800만 마리
[김성호 기자]
한반도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화가는 누구일까. 신라시대의 인물 솔거다. 그 이전에도 벽화 등 수많은 미술 작품이 남아 있지만, 기록에 제 이름을 남긴 화가는 솔거가 처음이다. 고려시대 <삼국사기>엔 '솔거열전'이 실렸고, 조선시대 역사서 <동국통감>에도 황룡사 완성 뒤 솔거가 벽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 것이다.
솔거는 그림 실력이 걸출했던가 보다. 황룡사가 완공된 뒤 그가 담에 그린 소나무 그림 앞엔 수시로 새들이 날아와 벽에 부닥쳐 죽은 사체가 있었다고 전한다. 시간이 흘러 벽에 그려진 그림의 색이 발하였지만 새들은 여전히 계속 벽에 부닥쳐 떨어지길 반복하였다. 그러나 후에 어떤 승려가 색을 새로 칠하니 그로부터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게 이 설화의 완성이다.
▲ #충돌없는하늘 스틸컷 |
ⓒ SIEFF |
솔거의 제주보다 이름모를 승려의 마음씨를
그러나 이제와 바라보건대 후의 화가가 솜씨가 부족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그가 불살생계를 지키는 불교의 승려란 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거듭 새가 떨어져 죽는 담벼락 그림을 새로 칠하여 더는 새가 떨어져 죽지 않게 한 것, 이 이야기로부터 다시 읽어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라 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수백 년 앞서 극사실주의 화풍을 일으켰을지도 모를 솔거라는 화가의 재주보다도(물론 농담이다), 죽음의 행렬을 끊어낸 어느 승려의 공을 높이 평가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건져내야 할 게 있다면 그저 솔거의 재주만은 아닌 것이다.
▲ #충돌없는하늘 스틸컷 |
ⓒ SIEFF |
한해 800만 마리, 유리창에 부닥쳐 죽는 새
무려 788만 마리다. 한 해 인공구조물에 부딪쳐 죽는 새의 숫자다. 2018년 환경부 의뢰로 국립생태원이 수행한 연구는 한국에서 방음벽과 건물외벽을 비롯한 투명 구조물 등에 부딪쳐 죽는 새가 800만 마리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월로 환산하면 65만 마리, 매일 2만 마리가 넘는 새가 인간 때문에 죽음을 맞고 있다.
주범은 유리 건축물이다. 강화유리가 상용화된 이후 유리는 건축의 주재료로 각광받아왔다. 다른 재료가 가져다줄 수 없는 투명함을 활용해 안에선 탁 트인 시야를, 외부에선 미학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건축가가 유리 건축물을 제 설계에 적극 반영했고, 지난 세기 건축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 #충돌없는하늘 스틸컷 |
ⓒ SIEFF |
제21회 SIEFF,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현대 디자이너는 유리를 현대적인 재료로 믿고 유리를 많이 쓸수록 더 현대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상주하는 주택으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온실과 차가운 골조를 만들어냈다. -256p
그러나 유리건물은 여전히 가장 각광받는 건축물 형태다. 수시로 에너지 위기를 겪는 한국에서도 서울시 청사는 물론, 공공건축으로까지 유리건물을 적극 받아들였을 정도다.
▲ 조류충돌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거리에 조류유리창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스티커가 붙어 있는 모습. |
ⓒ 김성호 |
새 살리려는 활동가들의 수고로움
두 대학원생이 새들의 유리창 충돌 사례를 직접 기록하고 사체를 수거한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 주변에도 이름 모를 많은 새들이 떨어져 죽어 있다. 부리가 깨지고 충돌의 결과로 폐출혈이 일어나 죽는 사례가 허다하다. 담담히 기록하고 감정을 다스리며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들의 노력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기록을 보존해 널리 알리기 위하여 새 표본도 박제한다. 역시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보았던 <늑대의 나라에서> 속 늑대를 지키려는 활동가들도 같은 작업을 한 바 있다. 아주 오랫동안 박제는 동물을 죽인 인간의 강인함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행위로써 수행돼 왔다. 그러나 이제와 이들 활동가들에게서 사안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고 문제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흥미로운 장면도 제법 있다. 특히 연구를 통해 새를 보호할 수 있는 학술적 근거를 만들려는 작업이 나름의 성과를 엿보게 한다. 이들이 연구하는 지역, 즉 도심의 새들에게서 부리가 차츰 짧아지는 모습이 관측된다. 새로 태어나는 개체들이 제 종의 평균적 부리길이보다 짧은 부리를 갖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는 것이다. 새는 부리가 짧을수록 시야가 확보되게 마련이다. 늘어난 유리건축물이 부리 짧은 개체의 적자생존을 이끌어내고, 그로부터 종의 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 SIEFF |
충돌없던 하늘이었다, 인간이 바꾸었다
그러나 이것이 영화가 얄팍하다는 뜻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을 불러와 유리벽에 함께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모습에선 아직도 한국이 도달하지 못한 동물과 생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드러난다.
<#충돌없는하늘>은 마땅히 충돌 없던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스스로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새들에게 앗아간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한다. 새들이 충돌한 뒤 나타난 자국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이전엔 그저 새가 배설한 흔적으로만 여기던 것을 달리 보게끔 한다. 이쯤 되면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엔 너무나 많은 유리건축물이 있다. 디자인공모를 통해 당선된 이런저런 건축가의 어여쁜 유리건물은, 그러나 너무나 많은 새들을 죽여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는 14세기 전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듯, 솔거의 걸작만을 바라본다. 죽어 떨어진 새도, 그 새를 구한 승려도 바라보지 않는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점으로 된 패턴, 5센티 간격의 좁은 패턴을 유리건물 외벽에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조류 충돌이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겨우 이 정도 노력이라면 한국에서 하지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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