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창희는 왜 잘렸나
근 십년째 동네 먹자골목에서 해물포차를 하는 삼촌(사장)이 주방이랑 홀을 두루 돌보는 직원 창희를 갑자기 자르기로 했대서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자는 갚아야 될 거 아니야! 곧 신용불량자 되게 생겼어!” 나무라는 투로 들렸는지 삼촌은 정색하고 이렇게 받아쳤다. 삼촌네 가게의 일일 손익분기 매출은 대략 백만원. 그런데 요사이 평일에는 하루 육칠십 찍기도 버겁단다.
금·토 장사로 버티고 버틴 삼촌에게 떨어지는 건 월 오십 이쪽저쪽이다. 이렇게 된 게 어제오늘이 아니라는데, 하루가 멀다고 간판을 바꿔 다는 다른 가게들에 견주면 그래도 반짝인다 싶었고 오가며 마주치는 오래된 단골들이 여전해 이 정도로 심각하리라고는 짐작을 못 했다.
직원은 창희랑 주방 전담 이모님, 홀 전담 막내 등 세 명이다.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갚기 어려워서 셋 중 월급을 제일 많이 받는 창희를 정리하게 된 거다. 창희는 한 달에 삼백 조금 넘게 받는다. 창희를 자른다고 해서 그 돈이 삼촌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도 않는다. 다른 두 명에게 일을 조금씩 더 맡겨야 하고 그러자면 급여를 올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 떼고 포 떼면 백오십 정도 보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삼촌은 계산했다. 그래도 이자를 온전히 갚기는 어렵지만 일단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아껴봐야지 싶었단다.
“창희는 자기 자르지 말고 그냥 월급 깎으라는데 어지간히 깎아서는 티도 안 나. 티 좀 나게 깎으려면 최저임금이랑 주휴수당 같은 규정에 걸리고.” 조금 덜 받아도 일자리 지키기를 창희도 다른 두 직원도 원하지만 이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것이다.
삼촌 표현을 빌리자면 코로나19 때는 그야말로 가드를 완전히 내린 채 발가벗고 두들겨 맞았다. 일단 걸어 잠그도록 강제한 다음 대출을 ‘알선’하는 정책에 떠밀려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월세를 못 내기 시작한 뒤 시나브로 보증금을 모조리 까였다.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 다시 빛 좀 보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별안간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라는 폭탄이 떨어졌고 그 연기와 먼지가 걷히고 나니 물가가 어떻고 금리가 어떻고 하는 복잡한 사정이 손님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붙들어 맸다.
인기 메뉴인 물회·모둠해물·낙지탕탕이·해물떡볶이 등의 제조 원가가 대충 잡아도 30% 넘게 뛰었지만 값을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삼촌은 소싯적에 오래 한 퀵서비스 오토바이 알바 몇 탕이라도 가게 문 열기 전에 뛰어야 하나 싶은데 그러면 쉬고 잠자는 시간을 많이 줄여야 해서 고민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이 1년 전보다 2.1% 늘어난 1055조9000억원이고 연체율은 0.53%포인트나 뛰어오른 1.52%이며 취약 대출자의 연체율은 무려 10.21%로 치솟았다는(한국은행), 발표할 때마다 나빠져 이제는 무뎌질 지경인 집계치의 이면에는 절대로 무뎌질 수 없는 저릿하고 생생한 ‘삼촌들’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의 변곡점에는 정부의 경제·사회적 의사결정과 밑도 끝도 없이 여기에 얽혀든 정쟁의 결과가 둔탁하면서도 날카롭게 각인돼있다.
그중 어떤 건 지금의 최저임금 정책처럼 포장지만 예쁠 뿐 누구에게도 별로 좋을 게 없거나 많은 이들에게 해롭고 어떤 건 방사능 오염수 논쟁처럼 무도하고 무책임한 것이었음이 어렵잖게 증명된다. 음식점 등 일부 업종에라도 별도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은 이처럼 혼탁해진 상황을 현실화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 또는 첫 걸음일 수도 있었다.
지난 2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추천 일부 근로자위원이 투표를 막으려고 위원장의 의사봉을 빼앗고 투표용지를 찢는 등의 소동이 일어난 가운데 최저임금 차등적용 안건이 결국 부결된 건 대체 누구에게 이로우며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인가. 어느 자영업자·소상공인도 자기를 부자로 만들어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적어도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만은 분명히 피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게 만들지는 말라고 하소연하는 거다. 그날 찢겨 나간 투표용지는 그냥 종잇장이 아니다.
김효진 전략기획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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