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을 멀리해야만 하는 여성들... '허기'가 사람 잡네
[조영준 기자]
▲ 제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야식금지클럽>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야식은 현대인에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다. 물리적인 밤의 길이가 길어진 것은 아닐 텐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밤시간이 점차 길어진 탓이다. 꺼질 줄 모르는 도시의 불빛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매체의 콘텐츠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조금 억울해지려나. 중요한 것은 모두의 밤이 길어지면서 '삼시 세 끼'라고 부르던 전통적인 의미의 식사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 <야식금지클럽> 역시 우리가 가진 야식의 의미가 170만 년 전 초기의 인류가 시작했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영화 <야식금지클럽>은 야식에 대한 짧은 고찰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유쾌하다는 단어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영화의 톤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의미까지 얕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각각의 사정에 따라 즐겨왔던 야식을 멈추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현대인의 보편적이면서도 아주 사적인 고민들이 녹아 있다.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고 계획된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지만 현재에 머물게 되는 우리의 작고 연약한 의지다. 손만 뻗으면 문 앞까지 배달되는 야식의 유혹을, 이 도시의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을 우리는 거절하고 외면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묻는다.
02.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 지유(김연교 분), 채원(손예원 분), 혜영(장리우 분)은 지금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지유는 남자친구 인호(곽민규 분)와의 이별 이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채원은 빙빙이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겨있다. 두 사람이 존재와의 이별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면, 혜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감의 굴레로 고통받는다. 이들의 스스로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야식. 평소에도 멀리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감정적 고통은 이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 제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야식금지클럽>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한 입이 두 입 되고, 두 입이 세 입 되는 건 시간문제야. 허기에 놀아나지 말지어다."
야식금지클럽은 그런 세 사람의 작고 소소한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밤 9시부터 새벽 2시. 가장 충동적인 시간을 함께 버텨보고자 하는 것. 야식의 충동이 올 때 서로에게 털어놓는 것부터 가공식품에 굴복하지 않고 건강한 식습관을 만드는 것, 가짜 허기에 조종당하지 않고 건강한 주체성을 갖고 음식을 먹는 것까지가 이들의 모토다. 문제는 100일을 꼭 채워가던 이들의 의지가 하루를 남긴 99일째에 시험받게 되면서 일어난다. 주문한 사람은 없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꼭 채워진 수많은 배달 음식이 한꺼번에 집으로 찾아오면서다. 심지어 배달요청사항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배달요청을 하게 되면 주문취소를 부탁드린다는 이들의 간곡한 메시지까지 남아 있다.
▲ 제 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야식금지클럽>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세 사람이 거실에 보여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에 배달된 주문들이 어떤 이유로 그들에게 오게 되었는지 소개된다. 조금은 익숙한 전개이지만, 그런 상황과 대상에도 이제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지유의 모습은 우리가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고도 야식을 먹지 않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어려움과 마주하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와의 시간을 지워내고 감정을 흘려버리기까지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나. 이건 함께 모임을 만들어 의지하기도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야식을 참아내는 것쯤은 조금만 애를 쓰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가끔 생각은 나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눈앞에서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지만 도시의 삶 속에서 야식을 완전히 지워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의 권유가 있고, 길거리의 화려한 간판이 있고, 손만 뻗으면 닿는 배달 어플이 있다. 늦은 시간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식사를 하고 나면 점점 옷은 작아지고 말지만, 현실은 더 괴로우니 그 허기진 마음을 달고 짜고 맵게, 제일 쉬운 방법으로 잊고자 했다는 영화의 마지막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우, 채원, 혜영 세 사람이 달밤의 체조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길고 지독한 밤을 같이 버텨보기 위함. 99일째에 마음이 꺾이고 다시 또 내일의 목표를 세우게 되더라도 끝내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야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언젠가는 다다르고 싶은 자리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라지지 않는 야식의 유혹은 이들 모두의 상징과도 같다.
오랫동안 독립영화에 모습을 비춰왔던 배우들의 반짝이는 면모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만나 더욱 빛을 낼 수 있었던 작품, <야식금지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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