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절규’ 이상으로 파격적인 뭉크의 작품 세계로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손으로 양쪽 볼과 귀를 막고 있는 앙상한 남성의 그림,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절규’는 TV·SNS 등에서 패러디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현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그 ‘절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은 뭉크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인데요. 뭉크 미술의 최고 권위를 가진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을 포함하여 미국·멕시코·스위스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23곳의 소장처에서 온 140여 점의 작품을 14개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하죠. 석판화 위에 뭉크가 직접 채색한 전 세계에 단 2점뿐인 ‘절규’를 비롯해 ‘키스’ ‘마돈나’ ‘불안’ ‘뱀파이어’ 등 주요 작품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뭉크가 어떤 화가인지 잘 알고 있나요. 화가 자체보다 작품으로 더 익숙할 것 같은데요. 노르웨이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뭉크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이자 유럽 현대 미술의 대표 주자입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사랑·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가죠. 뭉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어요. 그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은 회화뿐만 아니라 연극·영화 등 독일 표현주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죠.
모더니즘에서 뭉크의 공헌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작품의 형태· 재료 및 색상에 있어 관행적 예술 규범을 무시해왔고, 그 때문에 동시대 부르주아와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들을 도발했죠. 회화에서 보이는 명백히 미완성적이며 습작처럼 보이는 특징, 그리고 판화에 에디션 넘버와 서명이 포함된 판본을 체계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에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걸작 ‘절규’를 포함한 그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작품들은 뭉크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으며, 시선을 사로잡는 동시에 강한 호소력을 지녀 현대미술의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 되었죠.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 뢰텐에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어릴 적부터 고열과 기관지 천식으로 인해 유년기엔 집에 머무르며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를 집중적으로 그렸죠. 어려서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잃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다른 가족들의 죽음을 빈번하게 눈으로 직접 본 경험은 작품의 주요 주제로 남죠. 그는 1880년대에 데뷔해 1944년 사망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화가로서의 뭉크는 매우 생산적이며 성공적인 사업가적 마인드를 지닌 인물이었죠. 그는 궁극적 목표인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존중받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열정적인 일생을 살았어요. 예술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전시를 기획하고 후원자·수집가·미술관 관장들과 막역한 지인들로 구성된 협력자 간 네트워크를 유지했습니다. 한편 뭉크의 작품은 나치 독일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 찍혀 압수되기도 했죠. 이는 뭉크가 1944년 사망할 당시 오슬로 시에 소장한 모든 작품을 기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절규’만큼 불안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은 미술사에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뭉크 하면 절망에 울부짖는 인물을 담은 대표작 ‘절규’를 떠올리고 ‘절규의 화가’로만 기억되기 일쑤죠. 그런데 이번 전시는 뭉크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들여다볼 좋은 기회입니다. 단순히 뭉크의 유명작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삶과 예술 세계는 물론, 독특한 화풍과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표현기법에 초점을 맞춰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깊이 있게 다루죠. 뭉크는 기존의 색배열을 과감하게 탈피하였고, 표면을 긁어내거나 작품을 눈과 비에 노출시키는 등 파격적인 실험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때로는 사진이나 무성영화의 요소를 유화나 드로잉에 도입하면서 전통적인 매체나 기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죠. 그는 이러한 탈전통적 실험을 통해여 자신의 경험을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승화시켰죠.
양수진 코디네이터는 이번 전시의 가장 특별한 점으로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수의 개인 소장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을 꼽았어요. “미술관에서 관리하는 컬렉션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개인 소장자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많은 분과 이 특별한 기회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 소장처는 모두 23곳인데요. 각 소장처에서 작품을 공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해요. 소장자마다 원하는 조건이 다르고, 결정 역시 숙고하는 편이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작품을 공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최초에 전시를 기획할 때는 90~100점 규모로 작품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작품을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려했던 개인 소장자들이 오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주최측에 신뢰를 보였고, 추가로 더 좋은 작품을 함께 보내겠다는 연락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140점이라는 많은 작품을 서울에서 소개할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이전에 전시된 적이 없습니다. 역사상 아시아에서 가장 큰 에드바르 뭉크 회고전입니다”라고 밝혔죠. 특히 노르웨이 뭉크미술관 밖에서는 공개된 적이 없는 작품 4점을 소개했죠. 우선 ‘뱀파이어’(1895)의 파스텔 버전은 어두운 색감의 소용돌이치는 듯한 라인과 섬세한 색채가 신비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죠. 섬세하지만 미완성처럼 보이는 무심한 재료 사용을 통하여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뭉크가 저명한 희곡가인 헨리크 입센과 예술적 교류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뭉크는 ‘헨리크 입센의 희곡 ’유령‘의 세트 디자인‘(1906~1907)에서도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해안의 겨울풍경‘(1915)과 ’옐뢰야의 봄날‘(1915)은 뭉크의 독특한 표현주의 기법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외부에 최초로 소개됐죠.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연작도 다수 소개합니다. 뭉크는 대표작들을 색채와 모양만 조금씩 바꿔 가며 반복해서 그리곤 했죠. 다양한 재료와 표현 방식을 통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가장 유명한 작품인 ‘절규’만 해도 원화로 취급받는 작품이 다섯 개가 넘을 정도죠. 이번에 전시된 다양한 연작들을 통해 표현하는 매체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와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컬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하모니를 즐길 수 있어요. 또한 많은 판화 작품을 소개하죠. 그는 석판화 인쇄물에 직접 색을 칠해 각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판화지만 작가의 손길이 직접 닿았다는 점에서 원화의 성격도 띠죠. 뭉크의 ‘채색 석판화’가 일반적인 판화보다 한 단계 높은 취급을 받는 이유입니다.
양 코디네이터가 “많은 사람들이 뭉크가 판화 마스터였다는 사실을 모릅니다”라고 말했죠. “뭉크에게 회화만큼이나 판화는 주요한 표현 매체였습니다. 뭉크는 같은 주제를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 화가였고, 그 실험은 주로 판화로 이루어졌습니다. 유화나 수채화보다 판화에서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도 다수죠.”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질투’ ‘팔뼈가 있는 자화상’이 대표적인 판화 걸작이에요. 판화 작품 위에 손으로 채색해서 독자성을 부여한 작품을 다수 전시하죠. ‘절규’(1895)를 포함한 22개 작품이 손으로 채색한 판화이고, 유럽 내에서도 이 정도 규모로 채색 버전의 판화가 동시에 전시된 적이 없어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요.
‘생의 프리즈’ 섹션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핵심을 이룹니다. 뭉크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핵심 프로젝트인 생의 프리즈 작업은 생명의 원천·매력·키스·이별·절망·울음·노년·죽음을 주제로 한 생명의 순환을 바탕으로 합니다. 상징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발전시킨 뭉크의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두 점뿐인 뭉크의 대표작 ‘절규’ 채색 판화도 여기서 감상할 수 있어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이 자행되었던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절규’는 20세기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892년 쓴 일기에는 이 장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메모가 있죠. “해 질 무렵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로감을 느껴 난간에 기대었다. 홍수와도 같은 불길이 검푸른 피오르 위로 뻗어 있었다. 친구들은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뒤처져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자연의 거대하고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뭉크는 요동치는 풍경, 그림을 대각선으로 가르는 다리 난간, 극도로 과장되게 기울어진 풍경을 통해 문명인으로서의 두려움과 패닉, 극한의 공포를 묘사합니다. 또한 주인공의 고립은 그의 정서적 상태와 필연적 강박을 더욱 잘 보여 주죠.
뭉크의 생애 전체와 예술적 실험을 조망할 수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은 ‘꼭 봐야 하는 전시’로 입소문이 나면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절규’를 넘어서 뭉크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이번 기회에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양 코디네이터가 “시각예술의 장점은 누구나 자신의 시선으로 보이는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뭉크에 대해 공부하면 더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만 준비 없이 작품을 마주하더라도 전해지는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뭉크에게 흠뻑 빠져 보시길 바랍니다”라고 전시 관람팁을 전했어요.
■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 기간 9월 19일(목)까지(월요일 휴무)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10분)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어린이 1만5000원
」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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