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국 보수당 몰락과 ‘중도 실용’ 노동당 재집권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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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분열 집권당, 190년 역사상 최악의 참패
노동당은 소득·법인세 동결 등 중도 민심 잡아
지난주 치른 영국 조기 총선에서 14년 만에 집권당이 교체됐다. 보수당(365→121석)은 궤멸적 패배를 당했고, 노동당(202→411석)은 압승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에서 득표율 차이는 10%포인트였다지만, 보수당은 1834년 창당 이후 190년 만에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총선 직후에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새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 총선은 한국 정치에도 큰 교훈과 시사점을 줄 요소가 적잖다. 1678년에 창당한 ‘토리(Tory)당’에 뿌리를 둔 영국 ‘보수(Conservative)당’은 토리당 역사를 포함하면 동서양을 통틀어 현존하는 가장 오랜 정당이다. 전통과 질서를 존중해 온 보수주의는 개혁을 강조한 정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가르침대로 시대에 맞게 변신하며 생명력을 이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영국 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무능, 당내 분열로 자멸해 왔다. 보수당이 집권하던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한 국민투표를 전후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됐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살인적 고물가로 유권자들이 민생고를 호소했으나 보수당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총리실에서 술판을 벌였고, 리즈 트러스 총리는 아무런 재정 대책도 없이 갑자기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해 큰 혼란을 자초했다. 2022년 10월 취임했던 리시 수낵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급증한 난민, 의료·교통 등 공공 서비스 관리 실패로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조기 총선 카드를 던졌으나 먹히지 않았다.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노동당의 재집권은 한국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배워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스타머 신임 총리는 노동당 대표 시절 사회주의 정책으로 꼽혀온 물·에너지 국유화 정책을 폐기했다. 소득세와 법인세 동결 방침을 발표해 중도 표심을 효과적으로 공략해 왔다.
반면에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 175석(현재는 170석)을 얻은 민주당은 선거 이후 역주행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버지 이재명’이란 충성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정치적 이익을 노린 무리한 탄핵 남발도 여론의 역풍을 받고 있다.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개편 등의 개혁 조치도 슬쩍 던져 놓기만 하고 발을 빼려 할 게 아니라 중도층의 민심을 잘 헤아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 신뢰를 얻고 수권 정당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다. 국익과 민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정당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진리를 영국 총선이 재확인해 줬다.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한국 정치는 영국 선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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