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상속세에 관한 단상

최훈 2024. 7. 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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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주필

근대적 상속세를 처음 도입했던 영국에서 “가장 불공정한 세금”을 물었더니 압도적 1위(48%, 2023년 6월 텔레그래프지)가 그 상속세였다. 부과 대상은 3.73%(한국은 6.82%)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인간이 불평등 버금가게 고통스러워하는 게 세금 부담”(토머스 홉스)이라는데 그중에서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죽음(물론 죄도 아니니)에 매겨진 부담이라 그리 억울해 하는 모양이다. 그 이념의 논박 역시 첨예했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가 군인 퇴직금을 주려고 시작했다는 상속세의 출발은 ‘20분의 1세(5%)’였다. 이 세율이 치솟은 것은 주로 혁명 등의 정치적, 이념적 이유였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최고 8% 상속세를 영국이 제정(1894년)한 이래 러시아혁명(1917년)을 겪으며 유럽의 상속세율이 20%대 이상으로 급등해 갔다. 귀족·부자들에 대한 다수의 반감이 자기 나라 혁명으로 번지지 않게 상속·소득세율을 앞다퉈 올려 복지로 돌린 타협이었다. 그 두 혁명의 중간,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1848년)을 통해 혁명의 최우선 과제 1~3번으로 ▶토지 몰수 ▶고율의 누진세 ▶모든 상속권의 폐지를 추동했다. 마르크스류 공산주의는 ‘가족’을 폐지돼야 할 사유재산의 확대·계승, 가부장적 계급, 여성 억압 등 부르주아지의 모순 그 자체인 해체의 대상으로 삼았다. ‘불평등의 출발점’으로 여긴 상속이 타도의 주 타깃이 된 이유다.

「 어쩌다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
가업 이어갈 고용·투자엔 어려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세제개편해
세금·고용·투자 더 기여케 해야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이 심각했던 1950년 3월, 전쟁 석 달 전 도입된 우리의 상속세도 당시 최고 90%에 이를 정도였다. 세원 포착이 불가능한 시절이니 세원이 그대로 노출된 때 한꺼번에 거두자는 ‘유산세’ 방식이었다. 등락하던 상속세율이 지금의 최고 50%로 고착된 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당시 “고액 재산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새 금융기법을 이용한 변칙적 상속 증여와 계열사 지배를 방지하기 위해서”란 정부의 논리였다. 20세기까진 부의 축적이 정경유착, 탈세, 부동산 투기, 차명재산, 분식회계 등의 비도덕적 수단에 의존했을 터이니 사후에라도 환원하자는 징벌의 인식이 반영됐음을 부인키가 어렵다. 지금 야당이 전가의 보도로 쓰는 ‘부자 감세’란 단어의 연원이기도 하다.

4반세기 지난 지금, 시대의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 기업의 국가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스타트업 부자도 많아지고, 기업 경영 역시 예전보다 더욱 투명하게 감시받고 있다. 그러나 20% 할증에 여전히 세계 최고의 60%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게 기업의 최대주주들이다. 일본(55%)을 넘어 세계 1등이다. 가업을 이어받아 많은 이와 가족의 생계를 계속 책임져줘야 할 기업인들이라면 마음 편히 고용·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할 시대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생전(또는 상속 이전)에 법인·소득·재산세 등을 모두 납부했던 이들의 유산에 가한 ‘이중 과세’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사후 6개월 내 덥석 떼어가니 투자는 물론 경영권 유지마저 화급해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온 게 아닌가. 오죽하면 기재부가 상속세를 물납한 넥슨 지주의 2대 주주가 됐겠는가. 40%, 50% 상속세가 복리로 부가되면 단순히 그 가업은 8대(1.68%), 5대(3.1%)에 이르러 소멸된다.

그러니 물려진 자본자산(주식, 채권, 부동산, 지분, 특허권 등)은 계속 영위해 기업 활동에 쓰도록 하되, 상속인이 주식·부동산 등을 매각해 개인의 가처분 소득으로 만들 때에만 ‘자본 이득세’ ‘유산 취득세’ 등으로 과세하는 게 보다 전향적인 접근일 터다. 상속세 50%를 낸 뒤 나머지 자산을 가처분 소득으로 만들면 다시 소득세 49.5%를 납부하는 지금은 사실상 75%를 헌납하는 ‘이중의 올가미’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개인의 노력과 성공에 대한 세금일 터니 누가 신나서 기업을 키우고 싶겠는가.

이 세금이 드문 부자들만의 것도 더이상 아닌 듯싶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5월)는 11억7000만원. 절반 이상이 10억원 이상인 상속세 타깃이다. 지난해 대상은 1만9944명. 그 전해보다 26.5%, 20년 전(1720명)에 비해 11.6배 폭증이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엔 서울 아파트 80%가 대상일 가파른 우상향이다. 올해 1200명의 부자(100만 달러 이상)들이 한국을 떠나는 순유출 세계 4위란 보도도 이어진다. 미국 역시 베이비 붐 세대(1946~64년생)와 그 이전 세대가 가계 자산의 81%인 84조 달러를 보유(뉴욕타임스)해 상속이 국가적 이슈로 다가오고 있다. 상속·증여에 부정적인 민주당의 바이든에게 맞서 재임 시 상속세 공제를 2배로 늘린 폐지론자 트럼프 간의 논란도 뜨겁다.

스웨덴·캐나다·영국·프랑스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완화와 단계적 폐지를 검토·추진하고 있다. ‘황금알 낳을’ 기업과 자본의 배를 가르지 않고 계속 키워가려는 이유에서다. 19~20세기 식 ‘부자 감세’ 공격보다는 나라의 부자와 기업을 더 많이, 더 크게 불려, 더 많은 세금·고용·투자로 더 크게 기여케 할 열린 사고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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