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대반전 못하면 영국 보수당처럼 '궤멸' 당한다
나라 밖을 보면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그야말로 아노미(Anomie) 양상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동맹인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 교체론이 불거져 격랑에 휩싸였다. 태평양 저쪽에서 한반도로 쓰나미가 몰려올 듯 위태롭다.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민국의 안보를 무작정 기댄다면 순진하고 무책임하다.
북한과 러시아는 유사시 군사 개입 조항을 담은 1961년 '조·소 동맹 조약' 수준으로 역사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렸다. 14년간 집권해온 영국 보수당은 1834년 창당 이래 190년 만에 최악의 총선 참패를 맛봤고, 독일·프랑스 등 유럽 대륙은 물가 폭등과 이민을 비판하는 극우 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
나라 안을 보면 백해무익(百害無益) 정쟁의 일상화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22대 국회는 개원식조차 못 열고 있다. 총선 승리로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은 범야권을 동원해 21대 국회 때보다 더 폭주할 태세다.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시도에 이어 검사 4명에 대한 무리한 탄핵안 발의를 보면 광적인 조급증이 엿보인다. 1심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이재명 리스크'의 현실화가 두렵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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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없는 올해, 마지막 골든타임
'채상병 특검' 간다면 수정안 내고
사과 안한 김 여사, 검찰 출두하길
」
야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과 함께 듬직한 국정의 동반자여야 할 여당 행태를 보면 안정감은 고사하고, 실망과 분노를 넘어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표밭이라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울산에서도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크게 빠졌다.
지난 4월 선거 참패에도 거듭날 몸부림은 잘 보이지 않고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입씨름, 내부 총질, 계파 분열로 날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윤이든 반윤이든 비윤이든 누가 당 대표가 된다 한들 민심이 돌아올지 기대난망이다. 나라 밖에서 태풍이 몰려오는데 여당은 아직도 총선 패배 책임론에서 헤매고 있다. 지난 1월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문자가 또 다른 내부 갈등의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총선 참패는 이미 지난 일이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2028년 총선 등 앞으로 남은 초대형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지금 한가하게 당내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국정과 애정 사이에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전열을 가다듬고 108석으로라도 똘똘 뭉쳐야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보일까 말까 한 상황이다.
2022년 3·9 대선 승리 이후 3개월 만에 치른 6·1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여당에 과분한 기회를 줬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받은 '무능한 검찰 정권'이라는 심판의 꼬리표를 지우지 못한다면, 집권 4년 차에 치를 2026년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 자리도 잃을 수 있다. 윤 정부가 지금 상황을 반전시켜 기사회생하지 못하면 집권 5년 차에 치르는 대선 패배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7년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면 민주당 정권 1년 차가 되는 2028년에 치르는 23대 총선은 민주당에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수 정당은 물론이고 헌법 가치를 지지하는 자유 우파는 2032년까지 '궤멸의 늪'에 빠질 우려가 높다.
당사자들은 나름 항변하겠지만, 대통령과 부인이 심각한 민심 이반의 빌미를 제공했다는데 이의를 달 국민이 몇이나 될까. 내우외환(內憂外患) 위기에서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대전략을 세우고 긴 호흡으로 큰 그림을 염두에 두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민심을 회복하는 것밖에 달리 묘수가 없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는 공정과 상식의 회복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 난제'를 신속히 매듭지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첫째, 채 상병 사건은 경찰 조사가 마무리 단계이고 공수처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특검 여부를 결단해야 한다. 특검 추천 방식 등 상식에 어긋한 민주당의 특검 법안에 국민의힘이 수정안을 제시하면 된다. 둘째, 명품백 수수 사건과 주가 조작 연루 의혹 등은 당사자가 공개적으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정면 돌파 카드 외에는 대안이 안 보인다. "법 앞에 예외도 성역도 없다"고 외쳐온 이원석 검찰총장 2년 임기(9월 15일) 전에 매듭짓는 것이 순리다.
지키려고 감싸고 두둔하다가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연말까지가 분위기 반전이 가능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2026년 지방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를 것이기에 정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간을 질질 끌어서 문제를 더 키우는 어리석음을 반복한 뒤에 땅을 치고 통곡하면 늦다. 헌법 정신과 가치를 지킬 자유 우파의 몰락으로 가는 역주행에 단호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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