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터치] 그랜드플루언서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그의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 부분에 이 문구를 인용했다. 실로 ‘노인’은 축적된 시간이 증명하는 가치의 보물창고와 같다. 나이 듦에 따라 분명 더 빛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시니어. 오늘날의 시니어들은 어쩐지 늙지 않는다. 담대해지고 깊어질 뿐이다.
핫한 할머니 베디 윙클(Baddie Winkle)은 시니어가 일으킨 소셜 미디어 혁명의 선두주자다. 그녀는 무려 93세의 패션 아이콘이다. 화려하고 대담한 스타일로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종일관 유쾌하게 전달하는 그녀는 무엇보다 긍정적인 태도와 모험적인 사고방식으로 전 세대 팬들을 사로잡았다. 80세가 넘는 보디빌더 어니스틴 셰퍼드(Ernestine Shepherd)는 1936년생이다. 56세에 운동을 시작해 71세에 첫 번째 대회에 출전했고, 이후 운동과 피트니스에 대한 열정과 지식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발성 이슈에 그치지 않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소통하는 동안 그녀의 인생철학과 건강에 대한 열정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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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증명하는 가치의 보고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활약
노화의 편견 깨고 존엄성 제고
세대 연결·사회적 포용성 촉진
」
한때 디지털 세상에서는 주로 관전자로 남겨졌던 시니어들이 오늘날 최신 크리에이터로 거듭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소위 계급장 떼고 콘텐트 제작과 공유에 대한 공평한 장을 누구에게나 열어주고 있다. 마치 로봇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만나자 막강한 미래 에이전트로 거듭나듯 시니어가 크리에이터가 되자 격이 다른 콘텐트로 무장한 파워풀 멘토로 부상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블로그, 팟캐스트 등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공유하고 지식을 전수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황혼의 인플루언서들을 일컫는 ‘그랜드플루언서’는 시니어 세대의 존재감을 확실히 증명한다. 그랜드플루언서들은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주역으로서 노화의 편견을 뒤엎고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술을 수용할 뿐아니라 기술을 도구로 삼아 삶의 다양성과 깊이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들의 콘텐트는 단순한 기억의 전승을 넘어 연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국내 역시 자랑할만한 그랜드플루언서가 있다. 2020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의 당시 나이는 73세였다.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윤여정 배우는 은빛 머리가 드리워진 주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고, 한 배우의 인생을 신중히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랜드플루언서들은 세대갈등과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evide)와 같은 문제를 마주한 현대사회에 매우 고무적인 존재로 역할 한다. 노화와 관련된 선입견을 깨고, 시니어 세대의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구독자의 절반이 젊은 층인 것처럼 그들의 활동은 다양한 세대 간의 이해와 연결을 증진하며 시니어들이 사회적으로 더욱 존중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노년기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줌으로써 사람들이 노화를 자연스런 삶의 단계로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랜드플루언서들은 자연스레 사회적 포용성을 촉진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그들은 문화적, 사회적 다양성을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침팬지 행동 연구학자로서 침팬지와 친해지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영장류학 최고 석학이자 권위자인 그녀의 올해 나이는 90세다. 최근에도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인스티튜트를 통해 지속 가능한 생활 방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활동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젊고 재기발랄한 유튜버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카메라에 두드러지는 그랜드플루언서들의 주름은 고귀함과 감동을 준다. 그들에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디며 얻은 훈장과 같은 내면의 평화가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인생은 그대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어떻게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제 노인은 단순히 ‘늙은 사람’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사람’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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