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역커플링’
상하이 취재 길. 한 공공기관 현지 주재원이 말한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 문의가 많아요. 그런데 그들이 기술 유출을 걱정해요. 한국에 투자하면 자기들 기술 다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기술 유출’은 한국 기업이 중국 투자할 때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다. ‘이젠 거꾸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실제로 전기차, IoT(사물인터넷), 로봇 등 많은 분야에서 우리 기술은 중국에 밀리고 있다. 우리 정부조차 첨단 분야 한·중 기술 수준이 역전됐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기술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끌어내는 동력이다. 냉장고, 핸드폰, 자동차, 화장품 등 많은 우리 상품이 기술력을 무기로 대륙 시장에 진출했다. 그렇게 양국 경제는 기술력을 고리로 커플링(coupling)되어 왔다. 이젠 거꾸로다. 중국 기술 제품이 국내에 밀려오는 걸 걱정해야 할 처지다. 우리 가정 거실에는 중국산 로봇 청소기가 돌고 있고, 도로에는 곧 중국 브랜드의 전기차가 굴러다닐 판이다. 커플링 구조가 역(逆)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양국 간 기술 격차가 만든 게 바로 ‘중간재 교역’이다.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중간재(부품·반제품)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했고, 중국은 이를 조립한 제품을 제3국에 수출하는 패턴이었다. 그것도 이젠 거꾸로다. 중국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간재도 그들이 잘 만든다. 게다가 가성비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입품 중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75%를 넘는다. 겉은 ‘메이드 인 코리아’인데 뜯어보면 부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 중간재 수입이 우리 경제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중간재가 생산 비용을 줄여 결국 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산 중간재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산업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중국에 휘둘릴 수도 있다. 요소수 사태는 이를 보여준다. 우리의 미래 경쟁 상품인 전기 배터리 역시 같은 함정에 빠졌다.
서방은 ‘차이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디커플링(탈동조화)’, ‘디리스킹(위험 축소)’ 등을 말한다. 한가한 얘기로 들린다. 우리는 중국 기술에 끌려다녀야 하는 ‘역(逆) 커플링’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니 말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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