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35] 꾹 참지 말라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았다.”
지난달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화를 공개하며 밝힌 소회다. 김 전 의장은 이태원 참사 한 달여 뒤인 2022년 12월 5일 윤 대통령이 자신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의 입에서 극우 유튜버의 음모론이 술술 나왔다”고 우려하며 “그런 방송 보시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멋대로 왜곡해서 개탄스럽다”고 반박했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1·2위인 두 사람이 벌이는 진실 공방만큼이나 마음이 불편했던 건 김 전 의장이 “참았다”고 한 부분이었다. 그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현장에서 직언을 하는 게 어땠을까. 당시 그는 윤 대통령과 다양한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김 전 의장을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여겼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거대 야당이 이끄는 국회의 수장은 무엇이 아쉬워 침묵했고, 뒤늦게 폭로를 한 것일까. 폭로는 힘없는 자가 권력에 맞서는 수단이란 점에서 국회의장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다.
대통령에 대한 직언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 항변하는 이들도 있겠다. 과거 정부의 한 수석비서관이 쓴소리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정을 전해준 적이 있다. 집에 돈도 많고, 돌아갈 자리도 있는 그였기에 “할 말은 하고 나오자”는 심정으로 수석직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막상 보고를 들어가 대통령이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를 쏟아내자 마음이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고급 정보를 보고받는 대통령의 주장이 맞을 가능성과 고언을 했을 때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져 향후 청와대 생활이 어려워질 우려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때 이미 보고는 끝나있었다. 그는 “이렇게 간신이 탄생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했던 한 전직 참모도 “대통령에게 쓴소리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확신이 서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또 쓴소리가 화두다. 모든 후보가 각자의 방식으로 윤 대통령에게 진짜 민심을 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수평적 당·정관계를 주장하는 후보도, 레드팀을 만들겠다는 후보도, 계파도 앙금도 없어 할 말은 할 수 있다는 후보도 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권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나오지만, 여전히 쓴소리가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는 방증이란 지적도 있다. 누가 되든 할 말은 꾹 참지 말고 바로 했으면 한다.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뒤늦은 폭로는 안 하니만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박태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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