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16세 출산, 자퇴, 요양보호사, 37세 때 할머니…英부총리 됐다
16살에 덜컥 임신해 학교를 그만둔 뒤 간신히 대학 학위를 받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노동조합 간부가 되며 정치에 입문해 영국 부총리에 올랐다.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는 지난 5일(현지시간) 출범한 노동당 정부의 정치스타 앤젤라 레이너(44)의 실화다.
레이너는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후 키어 스타머 내각에서 부총리 겸 균형발전·주택 및 지역 사회 담당 장관으로 임명됐다. 1980년에 그레이터맨체스터주의 스톡포트에서 태어나고 레이너는 빈한한 가정에서 자랐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어머니는 읽고 쓸 줄을 몰라 집에 책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16살이 되던 해에는 임신을 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스톡포트 대학에서 수어 등 사회복지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 지방 의회에서 수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이 때 노동조합 간부를 맡으면서 노동당에 입당한 게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됐다. 2014년 맨체스터 애슈턴언더라인 선거구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당선됐고, 노동당이 야당이던 시절 섀도우 캐비닛(예비 내각)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본인 스스로는 사회주의자로 칭하지만, 온건 좌파로 분류된다. 치안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강경파여서 “경찰은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먼저 쏘고, 질문은 그 다음에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유년 시절 반사회적 환경에서 받은 고통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16살에 남자친구와 사이에 첫 아들을 얻은 후, 노동조합 동료와 결혼해 두 아들을 또 얻었다. 2017년에는 장남이 딸을 낳으면서 37세에 할머니가 됐다고 알렸다. 개인적으로는, 첫아들을 노동당정부가 운영한 저소득층 복지 프로그램으로 키웠고, 직장 동료와 사이에 나은 두 아들을 조산하면서 의료보험(NHS)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그녀는 노동자 출신이란 점을 숨기지 않는다고 한다. 속기사들에게 연설문을 매끄럽게 수정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잘못된 문법 조차) 그것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영국의 정치 전문지 뉴스테이츠맨은 그녀를 2023년 영국 좌파 정치인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8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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