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부문이 걱정이다 [김선걸 칼럼]
최근 한 대기업이 경제부처 공무원을 스카우트하려다 두 명의 과장을 동시에 접촉해 논란이 됐다는 얘길 들었다.
‘을(乙)’인 기업이 ‘갑(甲)’인 공무원 둘을 입사하라고 경쟁 붙인 모양새다. 결국 그중 한 명만 회사를 옮기고 해당 부처와 뜨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함께 대화하던 한 전직 장관은 “예전 같으면 그 기업 간판 내려야 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관(官)에서 민간 기업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커지며 요즘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 매경 사회 면에는 신임 판사 38%가 SKY 출신이 아니라는 기사가 실렸다. ‘비(非)SKY 판사’는 10년 전 16%에서 급속도로 늘고 있다.
한때 판사 중 ‘서울 법대’ 출신 아닌 사람이 드문 시대도 있었다. 이젠 법조 엘리트들이 판사직을 기피한다.
전관예우도 줄어드는데, 명예도 예전 같지 않고, 로펌에서 연봉을 두세 배 주니 이해도 간다. 판사만 그런 게 아니다. 검사들도 지방 발령과 고된 업무로 인기가 식었다.
세종시 사무관들이 현실감이 떨어져서 웬만한 서류는 국장들이 직접 쓴다거나, 판사 시보가 훈련이 안 돼 있어 판사들이 애로가 많다는 등의 얘기도 있다. 우리 공공 부문의 인기 하락은 큰 추세인 것 같다.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한국은 이제 관 주도 성장을 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니 당연히 민간 주도가 자연스럽다. 글로벌 기업에서 인재가 많이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스토리의 결말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공동체의 중대한 일 상당수는 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업 하나를 살리고 죽이는 입법이나 규제는 국회와 정부가 담당한다. 재벌 총수나 거물 정치인들을 수사해서 감옥에 보내는 일들은 검사와 판사가 담당한다. 이렇게 대단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법질서의 형성과 유지는 공무원들이 맡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 생업과 생활을 좌우하는 건 여전히 공공이다. 공공의 수준이 떨어진다면 사회도 퇴행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걱정을 크게 더하는 부분이 있다. 권한은 점점 비대해지는데 질적으로는 하향하는 국회다. 부실해지는 행정부와 맞물려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요즘 국회의원들은 교양이나 입법 역량이 예전에 비해 너무 떨어졌다. ‘저런 사람들이 법을 만드나’ 싶은 인물도 꽤 된다. 보스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공천되는 구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실 공공 부문 질적 저하의 시작과 끝에는 국회가 있다. 22대 국회는 개원식도 하기 전부터 특검법 등을 쏟아내며 입법 횡포를 예고하고 있다. 국회가 이러니 공무원들이 일할 공간이 없다. 엘리트 공무원들은 의원들을 보며 사명감이 상처를 입을 것이다.
공공 부문은 사람으로 치면 뼈와 근육 같은 것이다. 강하게 단련해서 몸을 지탱해야 하는 섹터다.
공공 부문 부실은 결국 미래에 그 청구서가 날라온다. 법과 규제가 부실해지며 사회적인 비용이 눈덩이가 될 테니 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결국 우리 아이들이 직면할 것이다.”
현장에선 아직도 묵묵히 사명감으로 일하는 유능한 공무원들이 남아 있다. 그들 덕분에 버티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 가장 큰 원인인 국회가 해결 권한과 책임도 전부 갖고 있다. 난센스다. 그래서 걱정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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