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도 의원도 경찰도 모르쇠, 이젠 혈서라도 써야제"

이규홍 2024. 7. 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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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폐수 경찰 수사 결과 두고 전북 진안군 주민들 엄정한 조사 촉구

[이규홍 기자]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농부나 건설 현장에서 또는 택배 상자를 나르며 힘겨운 노동을 하는 이들을 보며 어떤 이들은 짐작한다. 저이들은 육체노동에 특화되었거나 이제는 인이 박여 별 힘들이지 않고도 잘 견딜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그렇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이게 내 일이려니 하며 참고 견디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들도 시원한 그늘 마다하지 않고 에어컨 잘 돌아가는 실내가 싫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 똑같다. 누군들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까.

무려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을 아무 보상도 대가도 없이 고약한 돼지똥 냄새를 견디며 살라고 하면 누구라도 욕부터 나오고 당장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 긴 세월을 냄새와 축산 폐수로 재산권은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 받는다면 독자께선 어찌하실 건가?

누구라도 못나서 농촌에 뿌리내린 사람은 없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농사가 내 일이라 믿으면서 땅에 기대어 살 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정치도 행정도 심지어 이웃인 보통의 시민들마저 너무도 가벼이 여기고 무시하는 건 아닐까?

2023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업종사자는 200만 명을 간신히 넘긴 상태다. 총인구 중 4%가 농민이다. 그 4%가 사는 농촌이 온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식량기지이자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 기지이자 온 나라의 쓰레기를 받아내는 쓰레기 매립장까지 품고 있다. 도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관광지의 기능은 덤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96%의 국민이 농촌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열패감이 드는 건 왜일까?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다 떠나버리면?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농촌에선 못 살겠다고 돌아오지 않으면?

이렇게 감정적인 글을 기사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하도 억울하고 어이없고 법과 제도로 되는 게 없다 보니 독자들의 감정에라도 호소하려는 것이다.

결과는 있는데 원인을 못 찾았으니 무혐의?

전북 진안군 마령면 오동마을에는 1986년에 축협이 세운 돼지 축사가 있다. 2만 4635평의 토지에 모돈 500두와 육성돈 6500두를 상시 사육하는 이 축사는 무진장축협의 자랑이다. 

"마이돈 포크는 깊은 골짜기의 깨끗한 물과 따뜻한 햇살과 맑은 공기가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곳에서 자라 더욱 신선하고 품질이 좋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무진장축협 '마이돈 포크'
ⓒ 무진장축협쇼핑몰
 
무진장 축협의 이 자랑거리를 위해 오동마을 주민은 물론 악취의 직접 피해자인 마령면·백운면·성수면의 주민들이 사십 년 가까이 참았으니 이제 노후화된 축사를 폐쇄하고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축산 폐수 문제로 주민들을 또 한 번 충격에 빠트렸다. 주민들은 축사의 축산 폐수(슬러지)를 모아두는 저장 탱크 파손으로 가축 분뇨가 하류에 있는 월운정수장 취수원에 유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축산폐수를 채수 중인 진안군청 직원 주민의 신고를 받은 진안군청 공무원이 현장에서 폐수를 채수하고 있다(영상 화면은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이 전주 MBC에 제공한 사진).
ⓒ mbc 화면 캡처
   
▲ 오동돈사에서 흘러나온 축산폐수 이 폐수에서는 동물분뇨와 부패한 동물 사체에서 발생한 걸로 추정되는 암모니아성 질소가 다량 검출되었다 (영상 화면은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이 전주 MBC에 제공한 사진).
ⓒ mbc 화면 캡처
폐수 방류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당연히 진안군청에 고발했고 군청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6개월의 조사와 수사를 마친 경찰은 이 사건을 검찰로 넘기지 않기로, 즉 불송치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이 불송치를 결정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공무원이 현장에 갔을 때 누수를 의심할 만한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무원은 축산 폐수를 확인하고는 근처를 살펴 어디에서 폐수가 흘러나오는지 찾으려고 했지만 정확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축산 폐수는 있는데 어디에서 유출됐는지 찾지 못했으니 검찰 불송치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결과는 있는데 원인을 못 찾았으니 무혐의라면 조사와 수사는 다 뭐란 말인가. 땅을 파거나 슬러지 저장 탱크를 뒤집어서라도 폐수 유출의 원인 지점을 찾아내는 게 행정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경찰은 나름대로 수사를 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넘겨준 사건자료를 접수만 하고 6개월간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우린 확신합니다. 신고자나 참고인 조사 한 번을 하지 않았거든요. 수사의 진행에 대해 주민들이 물어봐도 일체 답변도 하지 않고요. - 최규진 섬진강 상류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둘째는 축산 폐수가 공공 수역으로 유입된 경로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축사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래쪽에 있는 마령천을 거쳐 월운정수장의 취수원인 공공수역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건 세 살배기도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맑은물사업소'로 갔습니다. 월운정수장이 관리하는 집수구역 현황도와 그 집수구역 안에 있는 유해시설이나 위험시설에 대한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좀 보자 했어요. 그런데 자료가 없다는 겁니다. 자료 한 장을 못 받았어요. 우리도 놀랐어요. 10년 동안 우리가 그 물을 먹고 탈 안 난 것이 신기했죠. - 조정평 (마령면 주민)

셋째는 공무원이 오염수를 채수할 때 현장 관계자를 입회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벽 시간에 공무원이 신고받고 유출 현장에 가서 폐수를 채수하고 촬영까지 다 했는데 현장 관계자를 입회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무혐의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처음에 진안군이 고발할 때도 의지가 부족했고 경찰도 밝힐 의지가 없었다고 봅니다. - 김기호 (마령면 주민) 

진안군은 경찰이 무혐의 불송치 결정을 내리자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5월 29일 자로 재수사 심의 요청을 냈다. 지금까지 군은 어떤 조치를 했고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주민들의 질문에 진안군청은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폐수 유출 지점으로 지목되던 슬러지 저장 탱크 3개는 어디로?

진안군이 작년 10월 10일에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직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축산 폐수의 유출 원인으로 지목받던 축사의 폐수침전물 저장 탱크가 10월 13일부터 15일 사이에 사라졌다. 농장이 철거한 것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탱크를 의심하고 그 탱크에 뭔가 장치가 있어서 상습적으로 유출한 것 아니냐, 그렇게 의심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고발 직후에 싹 없애버린 거예요. 그 저장 탱크는 정부 보조금으로 지어진 건데 보조금 연한이 얼마 안 남았었어요. 근데 그 보조금 연한을 못 채우고 갑자기 철거를 하는 바람에 보조금마저 토해냈습니다. 진안군이 보조금 환수하는 걸 우리가 확인했어요. 보조금 환수까지 당하면서 철거를 한 이유를 우리는 궁금해하는 거고요. - 최규진 섬진강 상류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들의 삭발식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진안군청 앞마당에서 집회와 삭발식을 했다.
ⓒ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
 
저희가 이번에 6명이 머리를 깎았는데 한쪽에서는 지금 혈서를 쓰러 가자고 그래요. 정말 그런 극단적인 방법까지는 가지 않아야 하지만, 이걸 어떻게든 밝혀야 하잖아요? 수십 년 동안 악취에 시달린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먹는 물에다가 비 올 때마다 폐수를 방류했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잖아요. - 최규진 섬진강 상류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먹는 물 상수원인 공공수역에다 고의로 폐수를 방류했을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주민들은 불법을 감추려고 폐수 저장 탱크를 철거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수사 중에 주민들이 진안 경찰서장 면담을 했어요. 우리가 의심하는 탱크가 철거되고 있으니 이걸 공사 중지 명령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건 수사기관에서 하는 게 아니고 고발 조치한 진안군청에서 해야 한대요. 그래서 진안군에다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군에서는 대답만 하고 슬러지 탱크 철거 다 할 때까지 아무 조치를 안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행정 권력과 사법 권력과 지역의 토착 세력들이 결탁한 토착 비리가 아니냐, 우리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겁니다. 다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 조정평 (마령면 주민)
이 문제로 군의회에도 수십 번 찾아갔거든요. 군의원들도 대답은 잘합니다. 우리의 의견을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대답만 잘하고 있지 이 문제로 군정 질문 한 번을 안 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주민들 찾아와서 굽신거리고 90도로 절하고 나면 전라도니까 민주당이라고 하면 다 찍어주잖아요. 그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아무리 지역색이 있어 민주당 간판만 달면 다 찍어준다고 해도 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면 당연히 떨어뜨리고 바꿔야죠. - 김기호(마령면 주민)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은 사람도 얼마 안 되는 시골 마을의 작은 단체가 아니다. 밴드 가입자가 300명에 이르고 회의 때마다 30여 명이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는 단체다. 물론 사안마다 이들이 단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환경 문제를 다루다 보면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작은 마찰도 생기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작은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입법, 사법, 행정의 답답한 대응이다.
 
오동돈사는 원칙대로 한다면 이미 문을 닫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계속 운영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건 명백히 행정당국이 의지가 없어서입니다. 군청의 공무원들도 너무 안이하고 무지하단 생각이 듭니다. 군수가 진정성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봤다면, 담당 직원들이나 경찰서장에게 전화해서 제대로 처리해 달라고 강력하게 의사 표현만 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어요. 먼저는 맨 위의 책임자인 군수의 잘못이고 국장, 과장 이 사람들 잘못입니다. 사실 말단 공무원들은 열심히 했어요. 저희가 냄새난다고 신고하면 새벽 2시에도 와요. 아침 6시에 가축분뇨가 새고 있다고 신고하면 그 시간에 와서 취수하고 검사 다 했어요. 말단 공무원이 그렇게 하면 위에서 검토하고 뭔가 보완해야 할 것이 있으면 보충하라 지시하고 책임지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저희가 보기엔 오히려 그 반대예요. - 최규진 섬진강 상류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번에 저희가 행정감사 청구를 다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한 번 실패를 해서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가축분뇨 발생량이 얼마고 처리비용이 얼마고 어떤 불법 사항이나 불편부당한 사항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해서 올리려고 합니다.  - 최규진 섬진강 상류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군청 앞마당에서 시위 중인 마령면민들 이날 시위와 함께 삭발식까지 했지만 주민들은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 섬진강상류환경운동연합
 

마령면 주민들은 군청 마당에서 집회를 할 때도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경찰이 요구하는 규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했다고 한다. 시간을 정해주면 그 시간을 지켰고 소리를 낮추라고 하면 낮췄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목소리를 냈다는 후회가 든단다. 변화가 없으면 다음 단계로 노인들이 혈서를 쓰겠다고 한다. 누가 좀 다치더라도 이제부터는 좀 세게 나가자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공감하면서도 손을 저어 말릴 수밖에 없었다.

존 롤스(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사회적 정의는 모든 구성원, 특히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사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차등의 원칙'을 말하며 사회적·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가게 하기 위한 경우에만 불평등은 정당화된다고 했다. 

법 앞에 평등, 국가도 지자체도 요즘 이걸 못 지켜 엉망이 돼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광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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