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집회 이끈 안기종 대표 "'중등증' 환자 불안, 참을만큼 참아"
"(경증과 중증 사이인) 중등증 환자들이 불안을 너무 오래 참았습니다. 의료계가 환자 불안을 도구로 정부를 압박하려는 것에 환자들이 화가 난 상황입니다."
대규모 환자단체 집회를 주최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대표가 7일 밝힌 집회 성사 배경이다.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공백이 5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집회엔 주최 측 추산 400여명이 참석했다. 수천 명이 곧잘 모이는 의사단체 집회와 비교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환자단체 역사로 보면 '이례적인' 규모의 환자·보호자가 거리로 나섰다.
안 대표는 2001년 아내가 백혈병을 진단받은 것을 계기로 시작한 환자단체 활동을 2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그 역시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바 있다. 그런 안 대표에게도 이날 집회는 감회가 남달랐다.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환자들은 혹시라도 치료받는 데 불이익이 생길까 싶어 의사나 정부를 향해 항의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은 집회해도 50명 이상 모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전국에서 400여명이 모였다. 그만큼 의료공백 사태가 환자 생명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중등증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계속 검사하면서 추적 관찰해야 하는 환자들의 검사·수술이 많이 지연되고 있다. 수술이 8개월 뒤로 밀린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중등증 환자들로서는 중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4일 집회에서도 "중증 환자와 그 아래 중등증 환자의 경계를 나누는 건 '칼로 물 베기'"라면서 대형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안 대표에게도 의료공백 사태는 풀기 어려운 '난제'로 꼽힌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 등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다. 그는 "최소한 연말까지는 전공의 복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료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내세웠다. 정부와 의료계뿐 아니라 국회의 역할도 크다고 했다. 이번 집회에서 환자단체들은 의료인 집단행동 시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중단 없이 제공할 수 있는 '집단행동 재발방지법'을 3대 요구 사항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환자 입장에서도 여러 제도적 공백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는 정부와 국회에 입법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식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2000명' 의대 증원에 대해선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에 따라 추계 논의를 하고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내년도 증원에 대한 소모적 논란은 이제 종결하고, 미래에 대해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이 정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이러면 의료계만 손해"라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의료 인력을 전문적으로 추산하는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 구성 등은 의미가 큰 만큼, 의료계도 의료개혁 과제에 같이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의사의 치료환경이 좋아져야 환자의 치료환경도 좋아집니다. 환자와 의사의 이해관계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사 목소리가 의료개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습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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