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상태 심각한 고령의 기사들”… 비난보단 대책 시급
“위축되는 건 사실이에요. 최근 사고들 때문에 고령 운전자라고 다 묶여서 비난받는 것 같고….”
22년차 택시 운전기사인 A씨(77)는 요즘 운전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령 운전자 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고령 운전자를 향한 비난 여론이 커진 게 의식된다는 것이다. 40년 경력의 택시 운전기사인 B씨(75)도 손님들에게 나이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B씨는 “내게 직접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없었다”면서도 “택시를 탔는데 운전자가 고령이라서 불안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고 말했다.
최근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가 연이어 알려지며 고령 운전자를 향한 비난이 확산하고 있다. 16명의 사상자가 나온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68세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운전자의 나이만 가지고 고령에 따른 운전 미숙을 탓하긴 성급하다는 반론이 있긴 하지만, 관련 기사에는 “고령 운전자들은 면허를 다 박탈해야 한다” “택시 기사들이 다 노인이라 겁난다” 등의 댓글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고령에도 생업을 위해 운수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토로한다. 생업을 당장 그만둘 수 없는데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사고 고위험군으로 몰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취지다. 경력이 오래된 기사가 젊은 운전자보다 노련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A씨는 “사고는 개인 역량이나 순간적 판단 실수로 발생하는 것”이라며 “젊은 사람들도 사고를 많이 내는데 언론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만 너무 부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법인택시 회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고령 운전자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건강검진을 하면 고혈압이나 당뇨 등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이 많다”면서도 “젊은 기사를 뽑고 싶지만 뽑을 수가 없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채용 공고를 내면 대부분 지원자가 65세 이상이라고 했다. 이어 “종일 운전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안 온다”며 “그나마 있던 젊은 기사들도 코로나19 때 배달 기사로 많이 이직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 회사에 속한 기사들의 평균 연령은 63세 정도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든 더 일하려 하지 나이가 많다고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며 “아무래도 생계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택시 업계에서도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가 계속됨에 따라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서울 법인 택시 기사의 경우 65세 이상이 50% 이상”이라며 “운전이 기사님들의 생계 수단이기는 하지만 운전자, 승객,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고령 운수업 종사자들의 건강 상태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택시와 버스 등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종사자들을 상대로 운전적성정밀검사(자격유지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65~69세는 3년마다, 70세 이상은 1년마다 시각·청각·공간 판단력 등 모두 7개 항목에 대한 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합격률이 90% 이상을 기록하는 등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택시 기사의 경우 2019년부터 자격유지검사를 의료기관의 적성검사로 대체할 수 있게 됐는데, 이 검사 또한 키나 몸무게 측정 등 기본적인 신체검사에 치중돼 있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3년째 운수업 종사자들의 건강검진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사 C씨는 “택시든 버스든 직접 만나본 운전기사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며 “대표적으로 고혈압, 당뇨, 이상지지혈증 환자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혈압이나 당뇨는 약만 먹어도 수치가 많이 좋아지는데 약조차 복용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장시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건강에 상당한 유해요인 아닌가. 그런데 과도한 음주와 흡연을 매일 반복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 관리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검진 결과 건강 상태가 심각해 업무에서 배제하는 사례도 자주 있다고 했다. 그는 “당 수치가 300mg/dL 이상이어서 운전하면 안 된다고 한 뒤 대학병원에 보냈더니 바로 입원했다고 하더라”며 “분명 평소에도 여러 증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혈압을 쟀더니 이미 위험 기준을 넘긴 분도 있었다”며 “그런 상태에서 운전하다 뇌출혈이라도 오면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눈 건강이 안 좋아 이미 시야가 좁아진 분, 난청이 있는 분 등 현장에서 만난 분들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더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씨는 “운전기사들의 이런 문제는 결국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건강 정보 문해력)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생활 습관을 어떻게 강제하겠나. 결국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고용하고, 관리도 제대로 안 하는 업체들에 보건 관리 비용을 더욱 엄격하게 물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고령 운전자들의 이동권을 무조건 제한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그보다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어떻게 안착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격유지검사 기준 강화 등 기존 규정들의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등 첨단 장치를 장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장치 장착시 보조금을 주는 방식의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며 “고령화율이 높은 일본에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이 되면 모든 것이 멈춰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주의해야 한다. 운전자의 연령에만 집중해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역연령(생활 연령)에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지적 기능과 신체적 반응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적인 규정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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