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신임총리 '르완다 난민이송 정책' 폐기선언…보수당 지우기
영국 총선에서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신임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전 정부의 간판 정책이던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백지화한다고 선언했다.
스타머 총리는 취임 하루 만인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고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은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히 끝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주민 유입) 제지 효과가 없는 속임수였다"고 강조했다.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은 전임 리시 수낵 정부(보수당)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다.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오는 망명 신청자를 영국에서 받아주지 말고 르완다로 보내자는 게 골자다. 비용만 3억1000만 파운드(약 5492억원)로 추산됐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었다.
스타머 총리는 해당 정책 대신 경찰·정보기관·검찰 등과 함께 국경안보본부를 신설해 국경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날 BBC는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폐기하는 대신 추방 대상인 불법 이민자 5만2000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올 상반기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에 유입된 이주민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스타머 총리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흙수저 장관 여럿…여성 대거 기용
BBC에 따르면 이날 전체 650개 선거구에서 당선인이 최종 확정됐다. 정당별 의석수는 노동당 412석, 보수당 121석, 자유민주당(자민당) 72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 9석, 영국개혁당 5석, 녹색당 4석 등이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첫 내각 회의를 주재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표된 스타머 내각 구성원 22명 가운데 상당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성장한 자수성가형 장관이다. 스타머 본인도 어린 시절 공과금을 못 내 전화가 끊어진 적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 집안에서 대학에 들어간 것도 스타머가 처음이다.
'흙수저' 장관의 대표적인 예가 가이아나 이민자 출신의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 외무장관이 된 데이비드 래미다. 그는 하버드대 법대에 입학한 첫 흑인 영국인이며 동문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친분이 깊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또 그는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네오나치에 동조하는 소시오패스"라고 비판한 전력이 있다. 다만 예비내각 외무장관으로 낙점된 후엔 공화당 인사들과 접촉을 넓히는 등 '진보적 현실주의' 외교를 표방하고 나섰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내각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을 고위직에 대거(6일 기준 절반인 11명) 앉혔다는 점이다. WP는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3가지(부총리·재무장관·내무장관)에 여성이 기용됐다"고 전했다.
앤절라 레이너 신임 부총리는 맨체스터의 공공주택에 살면서 겨울에 집안 난방을 꺼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16세에 출산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등 개인사에 곡절이 있다. 그는 지방정부에서 돌봄 서비스 업무를 하다가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더타임스는 레이너 부총리를 두고 "최근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 밖에 영국 첫 여성 재무장관으로 레이철 리브스,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내무장관에 이베트 쿠퍼가 각각 임명됐다.
한편, 스타머 총리는 6일 첫 내각 회의를 시작으로 7일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영국 4개 구성국을 각각 방문할 예정이다. 8일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정상외교 무대에 데뷔한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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