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옷 사지마세요, 왜냐하면

장슬기 2024. 7. 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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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 없는 멋부림" 고민하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작가

[장슬기]

 
 참여연대와 인터뷰 하는 이소연 작가
ⓒ 차종관
 
우리는 매일 입는 옷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상태로 살고 있다. 하얀 티셔츠 1장을 만드는 데 한 사람이 3년간 마시는 물의 양이 필요하고, 청바지 1개를 만드는 데 드는 탄소 배출량은 자동차로 100km 이상 이동한 것과 같다. 전 세계 항공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패션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더 많지만,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 국가에서 옷 쓰레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현재 시스템에선 옷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총체적으로 문제다. 옷을 입는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옷에 관심이 없거나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고 무관할 수 없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옷 소비를 부추기는 기만적인 패션산업과 합성섬유로 만든 옷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고 하지 않는 한국 사회 분위기다.

패션업계에선 화학물질을 사용해 실이 더 잘 끊어지게 만든다. 사실상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유행은 '패스트패션', '울트라패스트패션'을 넘어섰다. '리얼타임패션'의 시대다. 영국 쇼핑몰 아소스(asos)에선 매주 4500여 개의 신제품을 내놓는다.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신상품이 나오니 유행을 따라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양산된 옷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은 세탁 시 하수로 흘러가거나 공기 중에 떠다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몸속 어딘가에 축적된다.

이소연 작가는 지난해 말,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출간했다. 옷을 사지 않겠다는 선언은 개인의 소비 성향 문제가 아닌 패션산업과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고발이다. 그는 한때 디자이너를 꿈꿀 정도로 옷에 '진심'이었다. 서울에 있는 지하상가를 가보고 "쇼핑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다가 '세일의 나라' 미국에 가서는 "매일 숨 쉬듯" 옷을 "사냥"하러 나섰다고 털어놨다. '전문용어'가 쏟아지는 걸 보니 옷깨나 산 게 분명하다. 그는 어쩌다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고, 우리는 어떻게 입어야 할까?

"유행은 돈 벌려고 만든 허상일 뿐"

-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원래 쇼핑을 좋아했다. 서울에 와 지하상가를 갔는데 어디서든 쇼핑할 수 있어서 신세계였다. 여기가 '쇼핑의 정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보니 아니었다. '세일의 나라'라고 하지 않나. 숨 쉬듯 매일 옷을 샀다. 99센트, 심지어 49센트(600~700원)짜리 옷도 샀다. 그렇게 옷을 사냥하러 다니다 어느 날 1.5달러짜리 패딩을 발견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옷이었는데 그때는 수익 구조가 궁금했다. '패딩이 비행기든 배든 타고 미국까지 왔을 텐데, 어떻게 나 같은 유학생도 싸다고 느낄 만한 가격에 팔릴까.' 옷 산업에 대해 구글링을 좀 했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내용이 많았다. 옷 쇼핑을 많이 해왔는데 당연한 정보도 몰랐다니,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2019년 초여름쯤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 옷을 사지 않겠다고 하면 멋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나도 처음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멋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데 사회적 가치를 이유로 멋없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행이 만든 기준에 따라 트렌디한 옷을 입는 걸 멋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일수록 사회적인 요구 등으로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그 기준이 내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는 경우가 많다. 멋부림의 정의를 내가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책에 나온 '착취 없는 멋부림'이란 표현이 인상 깊다.

멋부림은 중요하다. 특히나 옷은 피부에 가장 가까이 있다. 인간은 배냇저고리부터 수의까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옷을 입고 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처음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 안에 온갖 착취가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옷을 소비함으로써 내 멋을 구성하고 싶지 않아졌다. 비건 중에 먹고 싶은 고기를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안 먹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이 책을 쓰면서 디자이너·MD 등을 만나는 과정에서 유행이 돈 벌려고 만든 허상이란 걸 알게 됐고 정말로 사고 싶지 않아졌다.

- '고기를 먹지 말자'는 주장보다는 동물에게 뭘 먹이고 어떻게 키워서 도축하는지를 알게되면 자연스럽게 고기를 덜 먹게 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처음에는 옷을 사지 않을 결심을 혼자 지속하기 어렵다는 걸 아니까 독자들을 도울 팁 위주로 책을 썼다. 옷을 안 사는 팁을 소개하고, '이런 기업이 만드는 건 좋은 브랜드다'라며 업사이클링(1) 제품을 소개했다. 그런데 나중엔 이런 내용을 다 뺐다. 대나무 칫솔이나 고체 치약을 친환경 제품이라면서 집에 물건이 있는데 새로 산다면 그건 너무나도 친환경적이지 않다. 친환경 제품은 이미 내 옷장 안에 있는 옷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친환경 옷을 새로 사기보다는 지금 옷장 속 옷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지구에 덜 해로운 방식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청바지를 염색시킨 폐수가 바다에 퍼지고, 우리가 귀여워하는 동물이 옷·가방·신발 만드는 데 쓰이는 등 비윤리적 환경에 놓인다는 걸 알기만 해도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 선진국에서 버린 '의류 쓰레기'를 결국 개도국에서 불에 태우고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도 하나?

의류는 합성섬유라 소각장에서 타는 것도 위험하지만 결국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간다. 의류 쓰레기를 수입한 나라의 어부는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점점 더 멀리 나가야 한다. 육지 근처에는 버려진 옷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에 관심을 두게 됐다. 바다 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또 바다는 지구 생태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 알 수 없다.

-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SSCS, Sea Shepherd Conservation Society 2) 에선 언제부터 활동했나? 해녀처럼 바다에 들어가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작업인가?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2019년 초겨울부터 활동했다.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서 수중 청소, 수중 정화를 한다. 버려진 폐어구가 바다에 돌아다니면 물고기가 그 안에 갇혀서 죽는다. 주로 동해로 가는데 국내 바다에는 장화 같은 신발, 어업에 쓰는 장갑 등이 많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바다에는 감시자가 없어서 고기를 잡으면서 버리는 쓰레기도 많고 해군이 버리는 쓰레기도 상당하다.

"옷을 교환하면서 맛보는 새로운 재미"
 
 강원도 양양 앞바다에서 폐어구를 끌어올리는 시셰퍼드 활동
ⓒ 이소연
 
- 지금은 당근(구 당근마켓)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당근에도 편집자가 있는지 몰랐다.

당근에 에디터는 나 혼자다. 당근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아티클로 쓰는데 앱이 아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당근 거래는 택배로 보낼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서 슬리퍼 신고 나가서 하는 게 좋았다. 당근이 만들어질 때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환경에 덜 해로운 비즈니스라는 걸 깨달은 거고, 지금은 이 역할을 확대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입사 지원할 때 '내가 지금 환경단체 면접 보나' 싶을 정도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후위기 시대에 당근의 더 좋은 역할을 함께 고민하며 회사 내부를 취재해 글을 쓴다.

-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엄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쇼핑몰 가자는데 멈춰 세울 순 없지 않나.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온 세상이 소비를 부추기지만 하나라도 작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 옷을 사는 재미는 사라지겠다.

옷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옷을 교환할 때 그냥 물건만 주지 않는다. 어디에서 샀고 이 옷을 입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하며 옷을 준다. 또 누가 나한테 헌 옷을 선물로 줄 때도 마찬가지다. 모임에 나가서 옷을 교환하며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가 소비자로 옷을 살 때와 전혀 다른 차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어떤 모임에 갈 때 뭐 입을지 고민하고 입을 옷이 없으면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다. 이제는 어떤 모임에서 옷을 받으면 다음번 모임에 그 옷을 입고 간다. 오늘 입고 온 이 옷도 회사 동료가 준 옷이다. 이 옷을 입고 인터뷰할 때마다 그 동료에게 연락한다. 엄청 소중해진다. 물건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

- 옷 교환 관련해 어떤 모임이 있는지 추천해달라.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진행하는 '21% 파티'가 있다. 전국에서 열리는데 입지 않는 옷을 5벌까지 내고 5벌까지 받아올 수 있다. 옷뿐 아니라 가방, 귀걸이 등 액세서리도 많다. 명함 크기의 키트에 옷에 대한 사연과 어떤 주인을 만나면 좋을지 등을 적는다. 옷을 고르다 보니 한 3~4개 글씨체가 똑같더라. 나와 취향과 체형이 비슷한 분이 왔다 간 건데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기후위기 전문매체 〈뉴스펭귄〉이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와 공동주최하는 '나눔옷장'도 있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부를 받은 옷을 선별해서 파는데 품질이 좋다.

- 개인들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옷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더 많이 소비하게 하는 패션산업을 보면서 이러한 활동을 기후범죄로 규정하고 기업에 책임을 두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감한다. 독자들을 만나 '책을 읽고 변화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사실 더 규모 있는 전환을 만들어야 할 주체는 기업인데 소비자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변화하는 거다. 물론 소비자가 움직여야 기업이 변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죄책감과 책임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대량으로 옷을 만들어 낸 기업이 져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RP 3)를 강화하는 추세다. 기업은 원래 판매까지만 책임졌는데 이제는 유통과 폐기 과정까지 책임을 확대하라는 개념이다. 기업이 정말 돈을 잘 벌고 싶으면 그냥 많이 팔고 끝날 게 아니라 잘 쓰고 잘 폐기해야 돈을 벌 수 있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참여연대와 인터뷰 하는 이소연 작가
ⓒ 차종관
 
1) 재활용품에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새활용.
2) 해양 생물 보호를 위한 직접행동을 하는 국제 비영리 조직이다. www.seashepherdglobal.org
3) 제품을 만든 기업이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한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2년부터 운영해 온 예치금제도를 보완해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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