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도 웃음으로 승화한 '배달의 마황' 롯데 황성빈
[이준목 기자]
▲ 202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배달 라이더 복장으로 등장한 황성빈(롯데 자이언츠) |
ⓒ KBO |
황성빈(롯데 자이언츠)이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도 최고의 신스틸러로 등극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쇼맨십에 자신의 흑역사마저도 웃음의 소재로 삼는 살신성인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환호와 박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난 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4 신한 SOL Bank KBO 올스타전'이 열렸다. 2만 2500명의 만원 관중이 인천SSG랜더스필드를 가득 채우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경기는 나눔 올스타(LG, NC, 키움, KIA, 한화)가 드림 올스타(SSG, 두산, 롯데, KT, 삼성)를 4-2로 제압하며 올스타전 3년 연속 승리를 거뒀다.
이날 올스타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선수들이 직접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전반기 프로야구에서 가장 핫한 스타였던 김도영(KIA)은 최근 종영된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패러디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김도영은 드림 선발 원태인에게 2루타를 치고 출루한 뒤 '도영이는 팬분들 땀시 살어야'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보였다. 이는 KIA 팬들이 최근 김도영을 응원할 때 사용하는 단골문구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인 '류선재'를 향상 응원하는 열혈팬이었던 것처럼, 김도영 역시 자신에게 항상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KIA 팬들를 향해 감사를 전한 것.
김혜성(키움)은 자신의 이름인 '혜성'을 연상시키듯 별풍선을 달고 별이 그려진 망토를 입고 나와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키움의 외국인 선수 로니 도슨은 모형 탕후루가 달린 헬멧을 쓰고, 탕후루 꼬치를 들고서 흥겨운 댄스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피자 배달부로 변신한 LG 오스틴은 한 손에 피자를 들고 자전거를 몰고 나와 포수 양의지에게 피자를 조공해 웃음을 자아냈다.
선수들의 가족과 함께한 퍼포먼스도 눈길을 끌었다. 둥글둥글한 체형의 두산 양의지는 두 딸의 도움을 받아 머리에 푸바오를 연상시키는 팬더모자를 쓰고 '양바오'로 변신했다. 류지혁과 박동원, 박찬호도 자녀들의 손을 잡고 등장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베테랑 최형우는 빈손으로 나왔다가 자녀들이 전달해준 방망이와 헬멧을 받아서 홈런과 2루타를 연달아 터뜨리며 가장의 힘을 제대로 증명했다.
'닮은 꼴' 코스프레도 빠지지 않았다.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희진과 도플갱어로 유명한 롯데 윤동희는, 등에 '동희진'이라고 새겨진 배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팀동료 김원중과 스파이크 서브까지 재연하며 팬들의 박장대소를 자아냈다. 배우 김광규와 닮은꼴인 박동원은 김광규의 '열려라 참깨' 앨범 자켓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다. 실제 올스타전에 참석한 김광규와의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두산 정수빈은 수달, KT 김민은 만화 <닥터 슬럼프>의 주인공인 아리로 분장했고, NC 김영규는 알파카 등으로 분장하며 닮은 꼴임을 인증했다.
'배달의 마황' 황성빈, 베스트 퍼포먼스상
하지만 이 모든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들을 한번에 잠재운 것은 바로 황성빈의 등장이었다. '마황'과 더불어 황성빈의 대표적인 별명중 하나는 '배달기사'다. 빠른 발과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통해 마치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며 안타를 배달하는 퀵서비스 배달 기사같다는 의미에서 생긴 별명이다.
황성빈은 이날 '배달의 마황'으로 변신해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3회말 라이더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면서 배달 주문 효과음과 함께 황성빈이 등장했다.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정말로 실제 라이더를 연상시킬 만큼 완벽한 '싱크로율'에 지켜보던 관객들과 동료 선수들도 폭소를 참지못했다. 또한 황성빈은 타석에서도 특유의 빠른 발을 앞세워 내야안타로 출루한 이후 1루에서 '배달완료'가 적힌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황성빈의 쇼맨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황성빈은 1루에서 갑자기 뛸듯 말듯 몸을 좌우로 흔드는 페이크 모션을 연달아 선보였다. 올시즌 초반 황성빈의 이름을 야구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이른바 '깐족 주루'였다. 황성빈은 당시 KIA 양현종을 상대로 이 플레이를 선보인 직후, 투수를 자극하는 비매너 행위라며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후 황성빈은 김태형 롯데 감독으로부터 주의를 듣고난 후 다시 그런 플레이를 하지않았다.
당시에는 분위기가 험악했지만 이날은 모두가 황성빈의 쇼맨십에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자신의 부끄러운 흑역사마저도 웃음의 소재로 승화시킨 살신성인이 빛난 장면이었다. 황성빈은 공수교대 상황에서 철가방에 로진백을 넣어 마운드의 박세웅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결국 이날 최고의 쇼맨십을 선보인 '베스트 퍼포먼스 상'은 황성빈에게 돌아갔다.
황성빈에게 2024시즌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시간이다. 2020년 2차 5라운드(전체 44번)로 롯데에 지명돼 2022년부터 1군 무대에서 출전기회를 잡기 시작한 황성빈은, 김태형 신임감독이 부임한 이후 꾸준히 중용되면서 최근에는 주전급으로까지 도약했다.
사실 올시즌 초반까지만해도 황성빈은 배트투척과 도발성 주루, 상대 투수와의 신경전 등 이른바 비매너 플레이로 인한 '밉상' 이미지로 더 유명세를 탔다. 여론의 비판에 황성빈은 "열심히 플레이하려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해명하며 변화를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성빈은 단지 엉뚱한 기행만이 자신이 가진 콘텐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라운드에서 실력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황성빈은 전반기 타율 .349(189타수 66안타) 4홈런 16타점 34도루를 기록하며 롯데의 '복덩이'로 거듭났다. 또한 올스타전에서는 부상으로 빠진 에레디아를 대신해 드림 올스타 외야수로 프로 데뷔 이후 첫 출전의 감격까지 누렸다. 대체선수였음에도 결과적으로 이제는 안뽑혔으면 어쩔뻔 했나 싶을 만큼, 황성빈은 올스타전에서도 자신의 야구 스타일만큼이나 확실한 쇼맨십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팬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밖에 최형우는 결승포 포함 3안타(1홈런) 2타점 맹활약을 펼치며 역대 최고령 미스터 올스타로 선정됐다. 3타수 2안타 2타점 맹활약을 펼친 드림 맥키넌(삼성)이 우수타자상을 수상했다. 나눔 선발투수로 등판해 1회를 퍼펙트로 막아낸 류현진(한화)는 12년만에 다시 올스타전 우수투수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올스타전은 성황리에 종영되기는 했지만, 7일에서 4일로 단축된 휴식기로 인해 더 촉박해진 일정, 올스타급 선수들의 체력부담이 커진 것은 옥에 티였다. 선수들도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올스타전에 더 최선을 다해 집중할 수 있다. 현장의 고충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바로 9일부터 다시 재개되는 후반기 리그에서 선수들의 올스타전 후유증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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