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덮친 AI]④저작권 전쟁 시작됐지만 제도적 대응은 '아직'
韓 AI 기술 이용 초기단계
전문가들 “법적 규제 시기상조”
편집자주 - 대중문화계가 AI(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작비 절감과 풍부한 영상 제작은 장점이다. 아역배우나 동물 촬영의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다. 반면 대중문화계가 AI 기술을 활용할수록 연예인들은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 광고나 보이스피싱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대중문화계에 스며든 AI 기술은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AI 기술의 활용 현주소와 발전 가능성, 제도적 보완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AI(인공지능) 세상은 창작자들에게 엄청난 기회이지만 ‘저작권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는 최근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 총회 연설에서 이같이 예측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드는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는 대중문화업계의 주요 화두다. 인간과 기계(AI)가 협업해 만든 작품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인간과 기계가 만든 영화, 소유권은?세계 각국에서 'AI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까지 AI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대본의 저작권은 인간에게 귀속된다. AI 영화 선두주자로 불리는 미국 데이브 클락 감독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의 구성, 등장인물을 토대로 AI가 창조한 인물이라면 저작권은 창작자(인간)에게 귀속되는 게 합당하다”고 봤다.
다만 AI가 학습해 만들어낸 결과물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저작권자 동의 없이 데이터를 쓰는 것도 저작권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뚜렷한 법적 기준이 없다.
AI 기술을 영화제작에 일찌감치 활용한 나라들은 최근 AI 제도적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AI 규제법(AI Act)을 통과시켰다. AI를 활용한 생체 정보 수집을 엄격히 금지하고, 개인 특성과 행동을 데이터화해 점수를 매기는 사회적 점수 평가인 ‘소셜 스코어링’을 제한하기로 했다.
최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형성한 미국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미국은 제작사가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 사용 시 동의를 얻어야 함은 물론 디지털 복제본을 이용하는 작업에 대해 실제 배우가 출연했을 때 받게되는 금액을 기준으로 보상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이는 AI·디지털 전환 시대 퍼블리시티권 문제에 대한 선도적 예시로 평가받는다.
반면 아시아는 분위기가 다르다. 저작권에 엄격한 일본조차 관련 규제에 신중한 입장이다. 일본 저작권법을 보면 ‘저작물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사례’에 한해 AI의 학습에 기존의 저작물 사용 제한을 두지 않는다. ‘부당한 이용’은 침해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 사례가 명확하지 않아 판단하기 어렵다.
국내 첫 저작권 등록사례는 ‘AI 수로부인’국내에서는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 ‘AI 수로부인’이 저작권을 최초로 인정받은 사례다. ‘AI 수로부인’은 시나리오를 담당한 심은록 감독이 나라AI필름과 제작한 AI 영화로 지난해 12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됐다. 다만 영상저작물이 아닌 ‘편집저작물’로 등록됐다. 편집저작물이란 창작성 있는 기존 저작물·문자·음성·영상 등의 집합물을 말한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없지만, AI가 만든 이미지를 인간이 선택하고 배열, 구성한 ‘창작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에 AI 저작권 관련 규제 법안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했다. 여기에서 사업자·저작권자·이용자 입장에서의 고려사항과 국내외 현황을 간단하게 다뤘을 뿐이다.
국내에서는 대중문화계가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제도적 보완은 기술 발전 속도와 비례해야 하는데, 아직 대중문화계가 활용하는 AI 기술이 규제 강화 입법을 진행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난 5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AI 국제 콘퍼런스’에서 만난 업계 종사자 다수는 “미래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몰라 두려워서 왔다”며 “국내 시장은 EU, 미국과 달라 AI 저작권 논의를 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AI 기술 도입 초기 단계에서 법적 규제 논의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법률적 해석에 천착하기보다 생산 유통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AI인지 아닌지’ 보다 ‘내게 최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 무엇인가’로 미학이 진화 중”이라며 “다음 세대는 AI를 통해 영화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클락 감독은 “중요한 건 ‘내러티브’(서사)”라며 “언젠가 ‘AI영화’라는 말도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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