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없는 글로벌 사우스 외교…한국 정체성 약해서 문젠가 강해서 문젠가
가치중립적 접근 한계 봉착했나
미국 동맹 이미지 강하다는 평가도
전 세계가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양분되는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일컬어지는 국가들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가 양 진영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거란 관측까지 제기되는 만큼, 중견국으로 거듭난 우리나라도 적극적 관여를 구상하는 분위기다.
박장호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은 최근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과 한국 외교 전략에 주는 함의'라는 주제로 진행된 한국국제정치학회 하계학술대회 다섯 번째 세션에서 "외교부 차원에서도 글로벌 사우스에 다가가는 일종의 외교 전략이라는 주제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면서도 "계속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박 기획관은 "글로벌 사우스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고민해야 할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많은 공적개발원조(ODA) 자원을 투여해 왔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경연 전북대 교수는 "한국은 새로운 이머징군(신흥국)으로 규범을 내재화하는 측면, 경제적 국익을 추구하는 측면, 6·25전쟁 파병 국가라든지 형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다양한 모습들로 상황에 맞게 원조를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박 기획관은 최근 들어 우리를 포함한 선진국 진영이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는 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며 "(한국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표현을 정부도 학계도 많이 쓰는데,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4년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치중립적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국제사회가 바라지도 않는다. 국익과 일치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설정하고, 이를 가이드라인 삼아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여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는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모색하는 윤석열 정부 대외정책을 강조한 대목으로도 해석된다.
"韓, 냉전 시기 가치중립 외교?
美동맹이라 반둥회의 초대 못받아
파트너 국가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사·연구 더 필요"
다만 한국이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과 글로벌 사우스가 체감하는 한국 정체성에 괴리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균 서울대 교수는 "한국이 정체성을 너무 많이 고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이라며 "한국 ODA만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한국을 위한 ODA를 많이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냉전 때 우리가 가치중립적으로 했는지도 약간 반대 의견"이라며 "당시 우리가 반둥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미국과 아주 가까운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반둥회의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여 '제3세계 세력화'를 모색한 회의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우리가 '냉전 내내 가치중립적이었다'고 주장했더라도 글로벌 사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파트너 국가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그리고 굉장히 깊이 있는 조사와 연구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규칙 기반 질서 최대 수혜국으로서
진영논리 벗어나 포용성 토대로
'한국형 발전 궤도'앞세워 설득"
결국 한국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지속하되 방점을 '포용성'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기획관은 "우리가 글로벌 사우스 포용 전략을 취한다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것 같지 않다"며 "과거의 가치중립적 외교는 굉장히 소극적 형태의 외교라면, 포용 전략을 편다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 행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명확히 규정한 뒤 "우리가 외교 대상으로 삼는 지역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다가올 수 있게"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상대적으로 우리가 (파트너 국가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한다. 그것이 결국 포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사우스가 굉장히 다양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안에 협력도 있지만 분열·갈등도 있다"며 "어느 국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우리의 국익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그들이 어떤 협력을 하고 있는가 등 사전 분석이 철저하게 준비돼야 우리 정체성과 그들 정체성이 교차되는 지점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규칙 기반 질서'가 제공하는 공공재의 최대 수혜국이 우리나라인 만큼,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형 발전궤도'를 확산·설득하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박 기획관은 "다른 나라, 다른 선진국들은 몰라도 우리는 어떤 진영 논리에서 탈피해 우리가 바로 공공재의 최대 수혜국이라는 점, 그것(규칙 기반 질서)을 당신들이 포용하면 한국형 발전궤도를 따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설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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