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는 순간, ‘몰락’이 다가온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2024. 7. 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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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신과 무신, 그리고 리스크
태종 이방원은 무신 기질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제로섬 게임’이 필요한 시기에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다.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문신적 마인드를 갖추지 않았고 결국 역사의 승자로 남게 됐다. 사진은 영화 순수의시대에서 정안군(태종)역으로 분한 장혁.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 세조를 죽이려다 발각돼 처형된 6명의 충신을 우리는 사육신(死六臣)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세조를 죽이려던 사육신의 암살 계획은 어떻게 발각된 것일까?

사육신은 중국 명나라에서 사신이 와서 세조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행사장에서 국왕인 세조와 다음 왕위 계승자인 세자를 동시에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꾀가 많기로 유명한 한명회가 왕과 세자가 동시에 한 장소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세조에게 조언해서 세자의 참석이 취소됐다. 이를 본 성삼문은 세자를 남겨놓고 국왕만 죽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한 반면 사육신 중에서 유일하게 무신이었던 유응부는 기왕 세운 계획이니 세조만이라도 일단 죽이자고 격론을 벌이다 결국 기회를 놓치고 아무도 죽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밤 세조 암살을 같이 모의했던 문신인 김질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세조를 찾아가 암살 계획을 고변했고 그 결과 사육신은 체포돼 죽게 된다.

이때 무신인 유응부가 죽어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서생과는 함께 일을 모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전쟁에 임하는 무신들은 일단 계획을 세우면 다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도 강철 같은 의지로 실행하는데, 유약한 문신들은 최적의 시기를 찾는다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배신자도 생기고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다.

게임이론 측면에서 전쟁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제로섬 게임은 양측 이익의 합이 항상 일정해서 한쪽이 얻는 만큼 다른 쪽이 잃게 되는 게임이다. 다시 말해 내가 잘되고자 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쟁은 보통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당히 극단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많은 경우 전쟁에서 승리하는 측이 모든 전리품을 독차지한다는 면에서 전쟁은 승자 독식인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결코 50:50이라는 식으로 전리품이 나눠지지 않고 반드시 승리한 쪽이 100이고 패배한 쪽이 0이 되는 승자 독식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에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미국인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미국에서 장교 훈련을 받을 때 가장 기억나는 말이 “최악의 지휘관은 잘못된 결정을 하는 지휘관이 아니라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지휘관이다”였다는 것이다. 말이 된다.

잘못된 결정을 하면 승리의 확률이 줄어들지만 여전히 0보다는 클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막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100%의 확률로 전투에서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터의 군인은 망설이기보다는 뭔가 신속히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에 LG트윈스를 29년 만에 우승으로 이끈 염경엽 감독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 팀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치고, 던지고, 뛰라고 주문했다. 실패를 감수하면서 도루와 번트 등 작전 지시를 많이 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이런 염경엽 감독 방침은 교수인 내가 조교 학생들에게 하는 말과는 180도 다른 말이다. 나는 조교들에게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한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실패를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것이 내가 조교들에게 주는 지침이다. 성공하지 않더라도 실패하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이익을 볼 수 있는 반면, 실패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서생의 철학이 들어 있다. 하지만 스포츠 감독 생각을 다를 수밖에 없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일 뿐, 중간이 없는 것이다. 망설이고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패배한다. 따라서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이길 수 있다면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이다.

스포츠 선수나 전쟁터의 무신이라면 다만 1%라도 승리 가능성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 가만히 있으면 승리 확률이 어차피 0%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문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를 승리와 패배라는 흑백논리로 보지 않는다. 특히 나 같은 경제학자는 많은 경우 모두가 이득을 보는 ‘윈윈(win-win) 전략’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어떤 사람이 상품을 팔고 어떤 사람이 그 상품을 사는 경우 누가 이득인가 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이득이다.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원칙이다. 파는 사람이 이익을 보면 사는 사람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고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논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인 것이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할 때 정도전과 이방원은 사이 좋게 태조 이성계를 도왔다. 하지만 조선이 건국된 이후 이 두 사람을 대립을 거듭하다 결국 이방원이 왕자의 난에서 승리하면서 정도전을 죽인다.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을 놓고 평가한다고 하면 두뇌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정도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역사학자들은 조선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정도전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도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도전은 스스로 앞장서서 조선을 건국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계라는 무신을 앞세운다. 고려 군대를 끌고 만주로 가던 중에 위화도에서 회군해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이성계인데, 상관인 최영 장군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 때 이성계는 자신이 승리할 확률을 어떻게 봤을까? 만일 문신이라면 계속해서 회군을 허락해달라고 상소만 올릴 뿐, 갑자기 휘하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명나라를 향해 진격을 하든지 반란을 일으켜 개경으로 진격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제로섬 게임의 생각을 논제로섬 게임 전문가인 문신은 하기 힘들다.

하지만 망설임은 곧 패배라고 생각하는 무신은 명나라를 치지 않을 것이라면 고려의 왕을 칠 수밖에 없다는 흑백논리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화도회군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문신인 정도전이 아니라 무신인 이성계였던 것이 아닐까? 조선이 건국된 이후 정도전은 다루기 쉬운 어린 방석을 세자로 삼고 실권을 잡는다. 이때 권력을 잡은 정도전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방원을 쳤더라면 예를 들어 80%의 확률로 이방원을 죽일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아마도 정도전은 이방원과 같이 윈윈할 수 있는 논제로섬 게임을 생각했을 수 있다. 또한 이방원과 전쟁을 벌이면 80%의 확률로 승리를 할 수 있지만 이는 20%의 확률로 패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문신의 마인드다.

반면 무신 기질을 가진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키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도전과 싸우면 승리의 확률이 20% 정도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낮은 확률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정도전과 싸우지 않으면 이방원은 100%의 확률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무신다운 생각을 했을 것이므로 건곤일척의 대결을 하기로 결심했을지 모른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리스크를 감수한 이방원과 망설이고 망설이면서 무력 충돌의 리스크를 피했던 정도전의 대결은 결국 이방원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무신의 기질이 항상 더 유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의 형 방간은 패배했고, 이괄의 난이나 동학혁명 등 실패한 반란이 역사상 많이 존재한다.

다만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행동하는 무신 기질의 사람과 세상을 윈윈 게임으로 보고 전쟁과 같은 리스크를 피하면서 협상과 공존을 추구하는 문신 기질의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필요는 있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정도전이지만 리스크를 회피하는 자신의 문신 기질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이방원을 먼저 제거하지 못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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