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함’과 ‘나약함’ 사이 고독한 줄타기 [유경희의 ‘연금술의 미술관’]
정신분열은 환각, 망상, 이상행동 등이 반년 이상 지속되는 만성적인 사고장애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고 부르는데,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 사회적인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개명됐다. 이른바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된, 약간은 문학적인 병명이다.
필자는 직관적인 의미에서의 ‘정신분열’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고자 하는데, 이미 현대철학계에선 그 명칭이 갖고 있는 편견을 넘어 새롭게 명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철학사의 거장인 들뢰즈와 가타리가 정신분열을 ‘창조적 퇴행’으로 정의,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 있는 개념으로 순환시킨 지 꽤 오래됐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학계에서도 정신분열증자(schizoid)가 갖는 놀라운 통찰력과 창조성에 관한 연구가 이뤄진 바 있다. 정신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강력한 영적인 비전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정신분열증자 중 일부는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없던 삶의 의미를 창조 행위를 통해 대신 얻으려고 한다는 점. 그러니까 사람이란 변덕이 심하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창조 행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신분열적 성격장애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대체로 학자들은 유아의 어머니와의 초기 관계에서 발생한 장애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력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 이때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적절하게 충족되면, 유아는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만약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못하면, 아이는 주변을 믿지 않게 되고 결국 감정 전반에 위험한 신호가 켜진다.
이런 예술가-정신분열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전지전능함과 연약함’이라는 양가적 세계에서 산다는 사실이다. 즉 쉽게 상처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극도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며 심지어 전지전능한 자라고 여기는 정반대의 심리 세계다. 그들에게 창조는 만드는 행위에 몰입함으로써 고통의 순간을 잊고 그 순간을 온전히 장악하는 힘이다. 바로 그때 예술가는 스스로의 나약함과 취약함을 잊고, 전지전능하다는 환상을 유지하게 된다. 이로써 예술가들은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평균적인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에 큰 만족을 느낀다.
여기 전지전능함과 나약함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독특하고 지독한 예술 세계를 보여준 거장들이 있다. 쿠사마 야요이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의 초기 관계에서 형성된 불신의 감정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1929년 일본 나가노에서 경제적으로는 유복하지만(종묘회사), 정서적으로는 갈등이 많은 부모(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어머니, 그 때문에 자주 집을 나갔던 아버지)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쿠사마는 열 살 무렵부터 심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발작과 몽환을 오간다. 가족, 특히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가진 딸을 집안의 망신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딸의 상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모친은 딸의 발작이 심해질수록 정신적, 물리적 학대 수위를 점점 높여갔다. 급기야 모녀간에 격투가 오갈 만큼 심각한 상태가 됐고, 때로는 발가벗겨놓고 골방에 가두기까지 했다.
이런 공포스러운 순간에 쿠사마에게 환각이 덮쳐왔다. 아마도 살기 위해 창조해낸 ‘환영(illusion)’이었으리라. 갑자기 빛이 번쩍인다든지, 무수한 점이 떠다니는 이미지가 보였다. 꽃들이 말을 걸어오거나 식탁보 패턴 같은 것이 증식해 그녀를 소멸시키려는 듯 덮쳐왔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빨간 꽃들이 있는 식탁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 창문, 기둥에서도 그 빨간 꽃들을 봤다. 그 꽃들은 방 안 가득했고, 그 방에서 나오지 않는 한 내 몸과 우주 전체를 뒤엎어버릴 것만 같았다. 난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내려다봤을 땐 계단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런 환각의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나마 갇혀 있다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것마저 반대했던 어머니는 팔레트를 발로 차거나, 그림을 찢고, 책상을 엎어버렸으며 급기야 화구를 빼앗아버렸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는 과정이 어린 시절의 주된 일과였다. 쿠사마의 물방울 이미지가 독창적인 시그니처가 된 슬픈 배경이다.
쿠사마는 48세부터 95세가 된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병원 앞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로써 쿠사마는 자기만의 세상의 통제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유년의 뼈아픈 애정결핍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의 작업은 자신의 표현대로 ‘예술-의학’이다. 쿠사마는 자신의 질병을 예술로 승화시켜, 스스로는 물론 타자까지 치유하고 있는 현대판 주술사가 아니겠는가.
뭉크 역시 주기적으로 정신분열을 앓았는데, 이 역시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질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나이 5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14살 때는 엄마처럼 돌봐주던 두 살 연상 누이를 같은 폐결핵으로 잃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도 정신병을 앓고, 이후로도 남동생의 죽음, 아버지의 자살 같은 큰 상실을 겪는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뭉크에게 치명적인 트라우마는 유년에 엄마를 잃은 일! 성년이 된 뒤에도 그는 침상의 죽어가는 어미 곁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자신을 여러 차례 그렸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말처럼 뭉크는 유년 시절 모친의 죽음으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의 감정’이 파괴됐고, 그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 여성을 너무 사랑하지만, 여성은 멀리해야 할 존재다. 그가 사랑하는 여성은 죽으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여성조차 뱀파이어나 살로메처럼 자신의 피를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묘사했다.
이처럼 정신분열자들은 타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비극은 증오의 감정만큼 사랑의 감정 역시 두려워한다는 점.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일은 곧 상대방에 의해 압도되거나 삼켜져버릴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쩌면 예술가들은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를 은근히 바랐을 수도 있다. 사실 뭉크는 자신의 분열 증세를 인지했지만 한동안 치료받기를 거부했다.
“나의 고통은 나 자신과 내 예술의 일부다. 나로부터 구별할 수 없으며, 그 고통을 파괴한다면 내 예술이 파괴될 것이다. 나는 그 고통을 유지하고 싶다.”
예술가의 정신적 질환은 그만의 독창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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