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 흰목물떼새에게 필요한 것은 기둥이 아니다

박은영 2024. 7. 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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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67일-68일차] 천막농성장 찾은 환노위 국회의원들

[박은영 기자]

 바닥보호공 끝에 앉아있는 물총새.
ⓒ 임도훈
"물총새다!"

멀리서 녹색으로 반짝 빛나는 게 보였다. 아담했지만 매끈한 몸이다. 물총새 한 마리가 한두리대교 바닥보호공 끝에 앉아 금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빨리 카메라로 포착했다. 작지만 화려했다. 푸른빛과 녹색 빛깔을 갑옷처럼 걸친 모습이 당당하기조차 했다. 새까만 눈동자엔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간밤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 텐트 위에 쳐 놓은 그늘막이 찢어지고, 이를 보수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노끈을 단단히 조여주면서 다소 걱정스런 마음이 스쳐지나갔다. 앞으로 버텨야 할 날들이 많아질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도 천막 안에서는 모두 숙제같지만, 물총새의 화려한 모습, 새끼를 부지런히 키우는 박새의 모습에 잠시 피로를 잊은 채 흥분하기도 한다.

천막을 집어삼킬 듯 차올랐던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빠졌다. 여전히 힘차게 흐르는 금강 앞 솟대 위, 새끼손톱만한 공간조차 물떼새와 할미새에게는 잠시 머물거나 뛰어놀 여백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맹꽁이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다. 천막농성장 위로 한 시절이 머물다가 또 한 시절이 오고 있다.

천막농성장 찾은 환노위 국회의원들… 세종보 재가동 반대
 
▲ 기자회견 모습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과 국회 환노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5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7명이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은 김주영 의원과 이학영, 박해철, 박홍배, 이용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정혜경 의원(진보당)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세종을)도 함께 자리했다. (관련기사: 국회 환노위원들 "세종보 재가동 중단… '죽음의 열차' 멈춰라")
물총새가 머물던 자리에 의원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빙 둘러앉았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낙동강 녹조 상황의 심각성을 의원들에게 알렸다. 특히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낙동강처럼 금강변에 사는 주민들이 녹조로 인해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 뒤 세종보 재가동을 중단시키는 데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보철거시민행동 활동가들이 방문한 국회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보 천막농성장 임도훈 상황실장은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 68일째"라면서 세종보 재가동을 반대하는 이유 등을 설명했고, 22대 국회에서 국정감사와 특별위원회 구성 등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국회 환노위원들과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환경부의 일방적인 세종보 재가동 강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후퇴하는 물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국회가 움직여야 할 시기가 왔다. 원 구성을 마쳤기에 새롭게 개정해야 할 법과 국가의 계획을 들여다보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야말로 윤 정부의 비정상을 '정상화' 해야 한다.

그 최우선 과제 중의 하나가 윤석열 정부가 폐기한 문재인 정부의 보 처리방안을 되돌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오늘 세종보를 방문한 국회 환노위원들이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강에 자리 잡은 부자연스러운 것들… 걷어내라
 
▲ 방치된 톤마대자루들 큰 비가 지나간 후 금강에 드러난 방치된 톤마대자루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장맛비가 한 차례 쓸고 간 금강에 흰 마대 더미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드러났다. 세종보 공사를 위해 인위적으로 물길을 바꾸려고 가물막이(둑)를 쌓았던 흔적이다. 공사를 한 뒤 치우지 않고 강바닥을 긁어 모래와 자갈로 덮어놨던 모양이다. 한편 남짓한 비닐 거적에 불과한 농성 천막이 금강의 물길을 가로막고 심지어 세종보를 손괴할 만한 지장물인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강제 철거 계고장을 날렸던 세종시가 떠올랐다.
 
▲ 강변에 설치된 횃대들 새들이 쉬어갈 모래와 자갈이 아니라 횃대 몇 개를 설치한 어처구니없는 4대강사업의 잔해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이뿐만이 아니다. 4대강 사업 하면서 강변에 횃대를 많이 설치했다. 수문을 닫으면 물이 차오르니 새들이 쉬라고 세워둔 것이다. 수천 마리 철새들이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와 쉬었다 가는데, 강에 고작 열 개, 스무 개 남짓한 기둥에 앉아서 쉬라는 말인가. 새들이 쉬기 좋은 모래사장, 자갈밭은 다 수장시킨 뒤 이렇게 횃대를 세워 두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강에 부자연스러운 것들은 걷어내야 한다. 그 부자연스러움은 그대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치워야 할 것을 치우지 않고 방치하는 것, 정작 필요한 것은 다 사라지게 하고 쓸모없는 것을 세워두는 것이 바로 그렇다. 강의 자연스러움을 훼방하는 보 또한 마찬가지다. 강을 썩게 하고 생명을 살지 못하게 하는 보는 활용할 가치가 없다. 걷어내야 한다.
 
▲ 수염풍뎅이 모습 한두리대교 조명 아래 힘없이 걷고 있다. ⓒ 임도훈

"여긴 생지옥이에요."

한두리대교 교각 조명 아래 기운 없이 늘어져서 흔들거리는 수염풍뎅이의 모습을 본 김재민 학생이 한 말이다. 수염풍뎅이는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종이지만 교각마다 설치된 조명 때문에 금강 주변에서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조명은 어떤 생명에게는 지옥과 같은 것임을 또 알게 된다.

산란시기가 끝난 요즘, 흰목물떼새 아기새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이다. 천막주변을 뛰노는 모습이 흐뭇하다. 처음 천막에 들어와 계속 지켜봤으니 천막과 거의 같이 자랐다. 이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녹색천막에서 온몸으로 버티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이 친구들에게 금강은 지옥이 아니다.  
 
▲ 금강은 생명의 집 금강은 그 곁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의 집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국회의원들이 머물다간 자리, 물총새가 앉아있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는 이곳의 뭇생명들과 함께 야생의 시간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거꾸로 흐르는 물정책을 바로잡고 우리들의 아이들과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치의 시간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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