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꿈' 새벽 2시까지 못 잔다…요즘 직장인 홀린 이 현상
환차익 노리는 환테크족 증가
40대 중반의 직장인 최모씨는 올해 들어 꾸준히 일본 엔화를 사 모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엔저(엔화 가치 하락)가 이어지더니 지난해부터는 더 내려 이른바 ‘수퍼엔저’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퍼엔저가 끝나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환테크(환율 재테크)에 나선 것이다. 그는 “매달 일정 금액만큼 엔화를 사고 있다”며 “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 엔화 가치가 상승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달러당 엔화값은 장중 한때 161.90엔까지 떨어졌다.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이날 원·엔 재정환율도 850원대로 미끄러졌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다가오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달러나 엔 등 외화를 사고팔아 수익을 내는 환테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때마침 외환당국이 외환시장 선진화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이던 외환거래 시장을 새벽 2시까지 연장했다. 이 덕에 환테크 투자자들은 새벽 2시까지 실시간 환전할 수 있게 됐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야간에도 해외 시장지표에 따라 실시간 환율로 환전할 수 있어 시장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테크족이 많이 찾는 외화는 단연 안전성이 높은 달러와 엔화다. 요즘 투자자들은 특히 엔화로 몰리고 있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1조2928억 엔으로, 지난해 6월 말(9373억 엔) 대비 37.9% 증가했다.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해 4월 말 5978억 엔까지 줄었다가 5월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엔화값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면서 엔화 가치 상승을 점치는 투자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달러 인기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기준 외화예금 중 달러 비중이 81.2%에 이른다. 최근 중동 불안 등으로 단기간에 달러 가치가 많이 오르면서 차익 실현에 나선 투자자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금리 인하 시점이 불투명하고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만큼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도 많다. 핀테크 업체인 트레블월렛 김형우 대표는 “변동성 높은 시장에서 원화 외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기 위한 달러 투자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앙은행들의 피벗과 전쟁 같은 지정학적 변수 등으로 환테크의 난도가 높아진 만큼 환율의 방향을 읽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달러의 경우 적어도 3분기까지는 강(强)달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준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지만 9월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며 “3분기를 변곡점으로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반대로 달러 가치는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러 가치의 가장 큰 변수로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이 꼽힌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한은 금융안정보고서 등을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질 3분기에는 원화가치가 더 떨어져 1400원 선이 뚫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하를 전제로 했을 때 3분기 달러 환율 상단은 1420원, 4분기 상단은 1380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강달러가 3분기 정점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뒤이어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해 한·미 금리차가 줄더라도 강달러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는 “미국과 유럽 간의 통화정책 간극이 최근 달러 강세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인데, 유럽은 기준금리를 내리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확신할 수 없다”며 “연준이 금리를 한 두 차례 내리더라도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추세가 상당히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380원~1390원 선을 오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에 비해 엔화의 변동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은행(BOJ)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이후에도 일본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엔화값 상승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수퍼엔저는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이 때문인데, 미국의 높은 금리가 유지되고 일본 금리도 급격히 오르지 않는 한 양국의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움직임이 강해져 엔화 가치는 약세일 수밖에 없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엔화는 장기적으로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수퍼엔저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경우 변동성이 큰 만큼 단기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산 헤지(위험회피)를 위한 장기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환율이 낮을 때 달러를 예치했다가 6개월~1년 후 환율이 오르면 인출해 환차익을 보는 외환예·적금 상품이 대표적이다. 외화예·적금은 원화 예·적금처럼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환전수수료가 부과된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자산을 분산투자하는 의미에서 달러 보유는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적금을 눈여겨 볼만하다”고 말했다.
“무위험지표 금리 추종 상품도 투자처”
달러 예수금 등을 보관하는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상품으로 자산을 분산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RP는 증권사가 보유한 미 국채 등 외화 우량 채권을 일정 기간 이후 다시 매수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판매하는 채권으로, 하루만 투자해도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증권사별 수시 외화 RP 수익률은 세전 연 4~5%대다. 다만, RP는 예금자보호가 안 되는 상품인 만큼 환율 변동에 따라 원금이 손실될 수 있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환테크보다는 미국 채권, 주식 등 달러화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투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며 “미국 주식 등 달러 자산을 운용하면서 RP 상품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환전수수료나 환율 우대율 등을 계산해 투자하는 것이 어렵다면 달러·엔 가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거래소에는 미국 달러선물지수를 추종하는 ‘Kodex 미국달러선물’, ‘Kodex 미국달러선물 레버리지’, ‘Kodex 미국달러SOFR금리액티브(합성)’, 일본엔선물을 추종하는 ‘TIGER 일본엔선물’ 등이 상장돼 있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5일 기준 ‘Kodex 미국달러선물 레버리지’와 ‘Kodex 미국달러선물’의 올해 수익률은 각각 16.04%, 8.96%다. 홍 대표는 “무위험지표 금리(SOFR)를 추종하는 상품의 경우 미국 정책금리가 급격하게 낮아질 가능성도 적고, 매매 비용도 비교적 저렴해 가장 합리적인 환테크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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